월마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머니투데이 엄성원 기자 2007.10.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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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소매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했던 월마트의 기세가 예전같지 않다.

1970년대 탄생한 월마트는 특유의 매장 대형화를 통해 미국은 물론 전세계 소매시장을 주름잡았다.

저렴한 가격과 끊임없는 확장으로 점철된 월마트의 시대는 소매업의 황금기라고 부를 만하다.



월마트의 거침없는 성공 신화는 업계는 물론 세계 경제 지도도 바꿔놨다.

월마트의 저가 공세를 통한 매출 확대로 미국의 전체 생산성은 향상됐고 물가는 안정됐다.



수백만 소비자의 구매력이 상승했고 이에 힘입어 아시아 제조업도 되살아났다.

월마트의 대형 할인매장 신화 뒤로 수많은 소형 상점들이 스러져갔고 백화점이 늘어선 번화가 상권도 축소됐다.

월마트가 초래한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일 월스트리트저널은 월마트가 계속 이전처럼 소매시장의 황제로 군림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를 달았다.

◇ 장점이 단점으로



월마트가 소매시장을 점령한 무기는 "저가로 다양한 제품을 공급, '원스톱 쇼핑'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월마트는 매장 대형화를 통해 보다 높은 쇼핑 효율성과 균일성 그리고 규모의 경제를 추구했다.

월마트의 이런 전략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존 멘처 월마트 부회장은 지난달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향후 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월마트의 본모습은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수퍼센터'에 있다고 못박았다.

멘처 부회장은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170~190개의 대형 매장을 추가 건설하고 기존 소형 매장 중 500개를 대형화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월마트 매장을 수퍼센터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형화, 균일화 전략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따라잡긴 무리다.

월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매장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소비자들은 원하는 모든 상품을 한 매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대형 할인 매장이 생긴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소비자들의 입맛은 변했다.



지금의 소비자들은 새로움과 다양한 선택에 더 끌리고 있다. 상품 진열대에 새로운 물건이 등장해야만 비로소 소비자는 눈길을 돌린다.

소비자들은 또 자신만을 위한 보다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받길 원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 변화에 따른 월마트의 어려움은 최근의 해외 시장 진출 실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월마트는 지난해 한국과 독일에서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다 자신하고 있던 규모의 경제도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현지화를 외면한 결과다.

일본에서도 난관에 봉착했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싼 게 비지떡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가격이 낮아지면 상품의 질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저가품이 품질에 대한 신뢰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월마트는 이런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고려치 않았다. 저가와 규모만 있으면 이길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서부터 실패는 시작됐다.



◇ 격차는 줄어들고

1996~2005년 10년 동안 스스로 밸류 루프(value loop, 가치 순환)라고 일컫는 월마트의 매출 창조 개념은 완벽하게 맞아들어갔다.

이 기간 월마트 매장은 최소 연 평균 5.2%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밸류 루프는 낮은 가격이 건강한 매출과 이익을 보장해주고 이를 통해 다시 가격을 낮추게 되면 더 내려간 가격이 재차 소비자를 끌어들여 새로운 매출을 창조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최근 밸류 루프의 헛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올해 월마트 매장은 평균 1.3%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경쟁기업인 타겟과 코스트코는 각각 4.6%, 6%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경쟁기업과의 가격 격차가 좁아지고 있는 데다 소비자들이 인파로 붐비는 월마트의 수퍼센터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보다 가깝고 편한 다른 매장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 공급 계약을 통해 월마트 왕조 건설에 일조했던 펩시콜라나 프록터앤갬블 등 대형 소비재 생산업체들도 월마트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월마트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예전같으면 월마트에서 가장 먼저 판촉행사를 열었을 펩시콜라는 최근 새 에너지 음료를 출시하며 아예 월마트에서 관련 행사를 갖지 않았다.



한때 전체 매출의 15%가 월마트에서 나왔던 프록터앤갬블의 2003년 매출 중 월마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3%로 떨어졌다.

이에 월마트의 주가는 내림세를 거듭하고 있다. 2일 월마트의 주가는 전일 대비 0.40달러 빠진 44.87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 초와 비교, 월마트의 주가는 9개월여 동안 9.3% 폭락했다.



결국 무리한 신규 매장 설치로 인해 기존 매장들의 이익이 지나치게 축소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월마트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1980~90년대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것이었다.

◇ 그래도 아직은 내가 최고



성장세가 많이 꺾이긴 했지만 소매시장에서의 월마트의 위치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지난해 월마트의 매출은 세계 2위 업체 프랑스 까르푸의 3배가 넘는다. 또 미국 내 라이벌 타겟 매출의 4배 반, 미국 2위 식품 소매점 크로거 매출의 4배를 넘는다.

월마트는 지난해 의류, 신발류 매출만으로도 뉴욕 메이시스블루밍데일 백화점의 모회사 메이시스의 전체 매출에 앞선다.



이 같은 압도적인 매출 규모를 바탕으로 여전히 소매가격을 흔들어놓을 만한 힘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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