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약달러에 시름, 페그제 어이할까

유일한 기자, 김유림 기자 2007.10.0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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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급기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0.50%포인트나 인하했다. 미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연준의 공식 선언이었다. 미국 달러화는 보란듯이 주요국 통화에 비해 약세를 지속했다. 달러화는 특히 유로화에 대해서는 1.42달러를 넘어서면서 사상최저치를 경신했다. 중국 위안화 역시 달러화에 대해 야금야금 강세다.

이 가운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홍콩이 미국의 금리인하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홍콩의 경제는 80년대 이후 가장 호황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 달러화에 대해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시행하고 있어 달러화 약세의 피해를 고스란이 입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속수무책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인구 700만인 홍콩 경제는 지난 4년동안 연평균 7%가 넘는 성장을 보였다. 주식시장도 올해 35% 올랐고 부동산을 비롯한 주요 자산 가격도 급등했다.

그러나 홍콩 달러가 미국 달러화에 대해 고정되면서 그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중앙은행인 홍콩 통화당국은 83년 페그제를 수용하면서 금리 결정에 대한 통제권을 FRB에 위임했다. 이에 따라 홍콩달러는 달러당 7.80홍콩달러의 고정 환율을 적용받게됐고 하루 5홍콩센트까지만 변동이 허용되고 있다.



홍콩과 미국 경제가 동조화를 보일 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처럼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로인한 신용경색으로 휘청대는 반면 홍콩 경제가 80년도 이후 가장 호황을 보이는 상황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존 창 홍콩 재무장관은 "미국의 9월 금리인하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만성적인 약달러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콩 정부의 이코노미스트인 K.C. 곽(Kwok)은 "금리가 더 내려간다면 약달러가 심화될 것이다. 이렇게되면 홍콩 경제는 통화 팽창에 따른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토니 래터 전 홍콩금융관리국(HKMA) 부총재는 "경제상황이 미국과 다른 조치를 필요로한다. 미국이 홍콩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게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홍콩 경제는 중국의 고속성장에 수혜를 톡톡히 입고 있다. 그러나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 제품들이 홍콩시장에 대거 수입되면서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는 실정이다. 7월 홍콩의 식품 물가 지수는 연환산 3.6%로, 8월에는 4.6%로 올라갔다. 10년만에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위안화는 달러당 7.8위안까지 오르며 홍콩 달러보다 비싸졌다. 위안화는 꾸준하게 절상되고 있다.

창 장관은 "올해 인플레이션은 정부의 목표치 1.5%를 넘어 2%까지 올라갈 것"이라며 "가장 큰 걱정은 인플레다. 특히 가난한 계층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1인당 GDP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중간계층은 미달러 기준 1만5400달러 정도의 GDP밖에 안된다. 다수의 중산층과 빈곤층은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소수의 부유층은 자산 가격 상승에 환호하는 상황인 것.
창 장관은 그러나 "페그제 때문에 인플레와 싸울 만한 무기가 없다. 환율이나 통화정책을 바꿀 만한 여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페그제 폐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나 리더들은 없다. 정부안에서의 피상적인 페그제 폐지 논의도 국가기밀사항으로 취급되는 상황이다. 홍콩금융관리국 대변인은 1일 "홍콩 정부는 페그제 아래서 환율 안정을 도모하겠다"면서 "현재 하루 변동 범위를 포함해 어떤 변화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페그제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것은 막지 못하고 있다. 래터 전 부총재는 "24년간 페그제가 유지돼왔지만 폐지해야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문제는 페그제가 최선인가(optimal)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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