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기록 등 개인정보 보호 '총체적 부실'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7.09.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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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등 뒤늦게 대책 마련 부산

지극히 민감한 사생활의 영역인 질병정보와 재산내역 등이 정부기관에 의해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유명 정치인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대상도 무차별적이다. 그런데도 제도적인 감시·제어 시스템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총체적 불감증'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대선후보도 열외 없어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3년부터 유력 대선 후보들에 대한 건강보험 정보를 조회한 건수가 130여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후보의 과거 병력이 포함된 개인진료기록 조회 및 열람도 6건이 포함돼 있다.



특히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진료기록은 검찰이 수사상 필요에 의해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해찬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질병기록은 총리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회의 요구로 넘겨졌다.

이를 포함한 130여건의 정보조회 중 상당수는 직원들에 의해 무단으로 열람된 것으로 나타났다. 적발된 직원들은 대부분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 사태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은 이뿐 아니라 2003년 2명, 2005년 8명, 2006년 24명, 올들어 1명이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한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그 중에는 친구 애인이 산부인과에서 임신중절을 받은 사실을 알려주고, 조직폭력배가 낀 불법 채권추심업자에게 개인재산 자료를 넘겨준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직원은 친지의 청탁으로 한 여성과 약혼한 남성의 치료내역을 확인해 간질 및 B형간염을 앓았던 사실을 알려줘 파혼의 빌미를 제공했다.

국민연금공단도 지난해 1~2월 단 두달간 특별조사에서 691명의 직원이 업무 외 목적으로 1647건의 가입자 정보를 무단열람했다. 이 가운데 972건은 연예인이나 정치인, 직원들에 대한 호기심 차원에서 열람됐다.

부랴부랴 '사후약방문'

당하는 입장에서 끔찍하기만 한 개인정보 누출사고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공단과 상급기관인 보건복지부는 팔짱만 끼고 앉아 있었다.

건보공단은 친구애인 임신중절까지 알려주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음에도 해당자에 대해서는 자체 징계로만 매듭짓는 등 '온정주의'로 일관했다. 연금공단은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라는 이유로 징계는 커녕 단순 주의나 경고에 머물렀다.

그러다 두 공단은 최근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가 이뤄지자 '사후약방문'격으로 뒤늦게 대책마련에 부산을 떨고 있다.

연일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건보공단은 업무목적 외 개인정보 열람에 대한 처벌 조항을 마련하고, 무단열람자에 대한 형사고발 조치 등의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응급대책을 내놓았다. 연금공단도 다단계 보안인증 절차 마련과 적발시 처벌강화 등을 약속하고 나섰다.

사태가 커지도록 방관한 복지부는 다음달 5일까지 건보공단과 연금공단으로부터 과거부터 현재까지 개인정보 유출사례 전체를 보고받은뒤 전면감사를 실시키로 했다. 또 위법사실이 확인된 직원에 대해서는 중징계와 함께 형사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외부기관도 한 몫

이명박 후보의 진료정보가 검찰에 넘어간 것처럼 힘 있는 외부기관에 건강보험 정보가 제공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건강보험법에는 자료제출 의무가 없지만 형사소송법 국정원법 국회법에 의해 검·경, 국정원, 국회 등에 매년 7~8만건이 제출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샐 여지도 충분하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검찰의 경우 거주지 확인을 위해 관행적으로 진료내역서를 이용하고 있다. 외부기관에서 요청이 오면 우리로서는 넘겨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사나 정보파악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건강보험 정보 제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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