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야기] 먼 나라 얘기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7.09.3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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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서는 특히 미국 경제 동향이 전부인 세상이 됐다. 숱한 경제지표 중에서도 주택관련 데이터가 가장 관심을 끌고 있다.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해 미국 증시가 급락하고 연준리(FRB)가 금리를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몰렸으니 주택지표가 각광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2004년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2년간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릴 때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금리인상 행진에 나섰던 FRB가 마침내 콜금리 인하 쪽으로 돌아섰다.
물가 상승압력이 여전하고 경기 성장세가 완연하다던 그간의 판단을 단숨에 버리고 증시 살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동산, 주식, 상품, 그림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온갖 자산가격이 앙등했지만 주택시장 버블이 터지면서 증시하락 요인이 되자 주가를 띄워 주택시장 붕괴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겠다는 조치다.

그러나 주택판매 지표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원리금 상환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이들이 무턱대고 주택 투기에 나섰기 때문에 금리를 조금 낮춘다고 주택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보는 것은 오산이다.
30년간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는 정통적인 모기지를 사용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변동금리 모기지 계약을 체결한 이들은 대부분 집값이 오르면 팔려고 했던 투기적인 사람들이다.



90일간 이자를 내지 못해 집을 압류당한 이들 중에는 모기지 대출업체의 거짓 선전에 속았다고 항변하면서 정부의 구제를 요구하고, 미정부도 이에 응하는 모습이지만 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주택 구입 후 첫 2년간 싼 이자만 내는 대신 나머지 28년간은 높은 이자율이 적용된 원리금을 분할상환하는 대출구조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말한다면 2년 안에 집값이 오를 때 팔면 그만이라는 투기심리가 발동했을 뿐이다.

세상에 어떤 금융기관이 손해를 보면서 대출을 해주는가, 금융기관을 자선단체로 생각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피라미드 판매에서 신규 가입자가 없을 경우 피라미드 구조 자체가 와해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들뜬 마음에 주택투기에 나섰는데 더 이상 뒤를 따르는 바보가 나오지 않으니 버블이 자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주택경기 침체로 미국 경제성장률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됐다. 富의 효과의 한 축을 상실한 미국인의 소비가 줄어들게 되면 경기는 둔화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고자 금리 인하를 지속한다면 1%까지 금리를 떨어뜨렸던 그린스펀 전 FRB의장 시절을 답습하는 게 된다.


저금리를 원하는 주가가 일취월장 상승세를 구가하면서 사상최고치 경신행진을 재개한다면 주식으로 먹고 사는 세상은 무궁한 발전을 구가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렇다고 주택시장이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금리를 낮춰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을 오르게 만들고 임금 이외의 소득효과를 가져와 소비를 이끌고 경기 활성화를 꾀했는데 부동산이 탈락한 이상 주식가격을 더 높여서 소득효과를 또 높이고 소비를 조장하는 경기부양책을 강구하고 있다.
근데 증시도 금리인하에 자극 받지 않는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되나.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금리까지 갔던 일본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다시 고꾸라지는 것을 보면 디플레 위험을 충분히 연구했던 FRB가 무슨 고민을 할 지 궁금하다.

이런 상황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서울 남쪽 동탄부터 북쪽 동두천까지 다니다 보면 아파트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과연 투기 마인드 없이 그 먼 곳까지 가서 고층 아파트에 살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택대출 금리가 2%포인트 정도 올랐어도 여전히 한자릿수에 불과하다고 무시하고 있지만 옛날과 달리 대출규모가 워낙 커졌기 때문에 이자 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집값이 계속 뜬다는 확신 때문에 버티겠지만 집값이 하락하게 되면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를 먼 나라 얘기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하긴 대선과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이 있는데 당장 있지도 않은 우려감은 괜한 얘기다. 800원대 원/달러환율도 아직 현실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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