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포퓰리즘' 법안에 몸살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07.09.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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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은 소비자 권익 보호.. 실효성 의문

금융기관들이 대선을 앞두고 남발되는 포풀리즘 입법 추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경영실적이 호전중인 카드사들이 주 타깃. 이 외에도 서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분야에서 유사한 성격의 대책과 법안발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게 명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비현실적이거나 효과가 없는 것들이 적잖다.

국회 정무위 소속 황우여 의원과 재경위의 엄호성 의원 등은 지난 7월 '여신전문금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신용카드 포인트를 '사후보상형 서비스'로 규정, 약관에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사후보상'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부채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포인트를 카드사들이 고객들에게 부수적으로 제공해온 서비스에서 벗어나 소비자에게 갚아야 하는 채무로 보라는 것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카드사들은 포인트를 고객유지 수단으로 쓰기 어렵게 된다. 서비스 비용이 아닌 부채로 분류되기 때문에 재무제표상 자산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계 전체적으로 미지급 포인트 잔액은 1조원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즉각 부채로 전환하면 대부분 카드사들이 기형적인 재무구조를 갖추게 된다.

포인트 지급 예비비를 늘 확보하고 있어야 돼 영업자금 조달비용도 올라가고, 법인세 부담을 가중시켜 수익성 악화를 부추긴다는 점도 부정적이다.



카드사의 관계자는 "원래 포인트는 고객이 찾아 쓸 수 있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도입됐는데,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회계처리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며 "사실상 포인트제도를 폐지하지 않는 한 도입이 불가능한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황우여 의원측에서는 고객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서비스인 만큼, 권익을 명확히 표시하는 금전적 개념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 의원은 법안발의 당시 "서비스의 내용을 카드사의 운영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경하거나, 서비스 사용기간를 자의적으로 단축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용카드 이용액에 상응된 일정한 상품이나 금전적 가치에 대해 제대로된 법적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말 금융당국과 업계가 포인트 사용에 관한 고객들의 권리와 카드사들의 의무를 정립한 표준약관에 이미 반영돼 있다.

황 의원은 더 나아가 사용기간이 소멸된 포인트는 카드사에 반환되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 등에 기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포퓰리즘 정책의 또 다른 예로 ‘채권 추심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공정채권추심법)’을 들 수 있다. 지난 8월말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인데, 금융기관들의 빚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르면, 채무자들은 자신을 대신해 금융기관과 협상을 하는 '대리인'을 내세울 수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 금융기관들은 채권추심시 정부가 선발하는 소비자신용상담사와 비영리 단체 등의 '대리인'을 통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A은행은 B씨가 1만~2만원씩 상습 연체를 하더라도 변호사나 법무사 등 대리인 C를 내세울 경우, 직접적으로 자금상환을 요청하는 전화나 우편안내 등을 전혀 못하고 모든 업무를 C를 통해야 한다.



얼핏보면 지나친 빚독촉에서 채무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금융기관이 돈을 상환받을 수 있는 길을 사실상 막는 셈이다. 이는 대출상환 뿐 아니라 카드요금, 전기 수도 등 공공요금, 전화비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하다못해 개인간 오간 자금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대출연체액 1만원을 받으려고 해도 대출고객이 갚을 능력이 없다고 대리인이 주장하면 그 것으로 상환이 무기한 연장되는 셈"이라며 "경제활동인구 수천만명이 모두 대리인을 앞세워 대출상환을 미룬다면 1년이 채 안되 모든 금융기관들이 도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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