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사랑하고 싶으세요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2007.09.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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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경제관료와 유명 큐레이터의 스캔들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지만 계절은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가로는 누가 있을까요. 브람스가 먼저 떠오릅니다. 덥수룩한 수염과 우울한 표정이 꼭 가을 이미지입니다. 유난히 담배를 많이 피웠고, 할 말이 많은 데도 표현을 절제하는 은둔자적 모습도 가을의 사색적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교향곡 4번이나 클라리넷 5중주, 비올라 소나타, 독일 레퀴엠 등 브람스의 대표작을 들어보면 그가 가을남자라는 느낌이 확실히 다가옵니다.
 
브람스는 화사하기보다 중후합니다. 콘트라바스나 비올라 같은 저음악기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베토벤처럼 스케일이 크고 깊이도 있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절제합니다. 작품의 마지막으로 가도 갈등이 증폭될 뿐 해결되는 게 없습니다. 미완성입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1악장 듣기




 
브람스의 음악이 어렵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브람스의 매력입니다. 진국 같은 남자, 사귀긴 어렵지만 한번 친해지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남자, 무심하지만 알고 보면 가슴이 따뜻한 남자, 이게 브람스의 특징입니다.
 
브람스의 이런 특징은 음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이 그랬고 사랑이 그랬습니다.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브람스의 로맨스에는 스승인 슈만의 아내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였던 14세 연상의 클라라가 등장합니다.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사랑은 20세에 만나 64세에 죽을 때까지 40년 이상 지속되지만 절제와 지켜보기로 끝납니다. 클라라가 죽었을 때 브람스는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내용"이라고 추모했지만 심지어 슈만이 죽은 뒤에도 클라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주기만 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고, 행복 그 자체였지만 스스로를 클라라에게 속박하진 않았습니다. 브람스는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이런 식으로 지켰습니다. 클라라가 77세의 나이로 죽자 다음해 브람스도 생을 마감합니다.
 
요즘 브람스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 어디 없을까요. 이젠 스캔들을 넘어 게이트와 신드롬이 돼버린 변양균-신정아씨 사건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우리가 두 사람을 비난하는 건지, 부러워하는 건지 헷갈리는 상황이어서 더 그렇습니다.
 
언론도 국민도 분홍빛 연서와 보석목걸이와 레지던스와 오피스텔, 그리고 진품인지 위작인지 모를 누드사진만 좇아다니는 현실이 보여주듯 요즘 사랑은 너무 도발적이고 자극적이고 즉흥적입니다. 절제라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가슴앓이도 없습니다. 계산이 너무 빠릅니다.
 
사랑은 원래 상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브람스처럼 스승의 아내를 사랑할 수도 있고, 반대로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전개하는가 입니다. 대개는 일방적으로 주려하고, 과시하려고만 합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하고 주기만 하면 아이를 망쳐버린다는 점은 잘 알면서도 이성 간의 사랑에서는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10대, 20대 사춘기 때의 경험으로 스스로 사랑 전문가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중년의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공부하고 콘서트와 전시장을 찾아다니는 것 이상으로 '사랑의 예술'을 익혀야 합니다. 이게 남자든 여자든 40대, 50대에 한번쯤 찾아오는 중년의 위기를 넘기는 방법입니다. 브람스처럼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 오래도록 사랑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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