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야기] 홍보의 늪에 빠진 세상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7.09.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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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홍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광고가 쏟아지는 것은 물론 수많은 이벤트와 후원이 넘친다.
홍보의 양 뿐만 아니라 홍보에 나서는 주체에도 한계가 없다. 민간기업이야 자사의 상품판매 촉진을 위해 홍보활동을 한다고 해도 홍보에 나설 필요가 없는 공기업이나 정부기관조차도 광고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민연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국민연금이 마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라도 하는 듯 TV 광고가 끊이질 않았다. 점점 더 내고 덜 받게 되는 연금이 '용돈마련 세금'이라는 오명을 쓰자 정부는 홍보를 강화하면서 국민 설득에 열을 올렸다.



진실로 국민을 위한 연금이고 사금융권의 연금보다 이로운 것이 확실하다면 강제적인 가입 규정을 바꿔서 국민으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만들면 될 일인데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여전히 강제 징수를 고수하고 있다.
연금재정이 고갈될 위기가 눈에 보인다고 국민을 위협하면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대국민 홍보전을 통해 눈가림이나 하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마치 암검진과 치료를 모두 무료로 해준다는 듯한 TV광고를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



기업체의 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증시를 움직이는 재료인 업체 보도자료도 홍보물이다. 공정공시는 나쁜 일도 알려야 하기 때문에 장 마감 이후나 연휴를 앞두고 슬그머니 발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걸 제외하고 회사에서 내놓는 모든 것은 다 홍보를 위함이다.

정부기관의 보도자료도 마찬가지다. 국가경제를 다루는 기관이고 구체적인 거시경제 데이터가 즐비하게 포함된다고 해서 국가운영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경제자료라고 보면 오산이다.
정부기관은 정기, 비정기적인 보도자료를 통해 업무 내용을 밝히는데 안 좋은 것이 있으면 자료 안에 작게 조금 싣거나 아예 빼버리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면 제목부터 크게 쓰면서 자화자찬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언론사가 정부의 발표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홍보에 말려드는 일이 된다. 정부기관이 공보실을 통해 발표한 내용을 자사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정부의 홍보담당자를 자청하는 일이며 작성자의 의도에 십분 부합하는 광고와 다르지 않다.


보도자료가 나오면 해설박스를 꼭 쓰면서 독립적인 언론의 역할을 다하는 후배도 있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가 사실 전달에 충실한다는 생각에 보도자료의 틀조차 깨지 않고 순응하곤 한다.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의 홍보맨이다. 연구원이 객관적 수치를 갖고 모델을 돌려서 나온 결과라고 객관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해외투자은행의 발표자료는 더더욱 그러하다. 특정 주식을 선제적으로 매집한 뒤 매수추천하기를 밥먹듯 하는 것이 일부 증권사의 생존 수단이다.

외환시장에서조차 홍보는 빠지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시장에 '개입'한 것을 '참여'라고 한다.
예전부터 한국은행의 일부 외환 담당자들이 시장개입을 참여라고 하던 것이 전 조직원에 세뇌가 됐는지 몰라도 책임있는 자리를 새로 맡은 자조차도 개입을 참여라고 하는 몰상식에 황당함을 느낀다.

개입을 참여라고 하면서 거짓 명분을 쌓을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개입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자세로 시장에 임해야 한다.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가 나갈 때는 거짓 해명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진의가 왜 통하지 않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할 일이다.
진정 사심을 버리고 국가경제를 위한 정책을 강구했고 제기된 의문에 대해서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비판과 비난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최소한 국가기관, 정부부처, 공사 같은 곳은 불필요한 홍보전에서 발을 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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