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누스 "모든 인류는 기업가"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7.09.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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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민은행 총재 겸 세계여성포럼 공동조직위원장 기자간담회

ⓒ이화여대ⓒ이화여대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67, 사진)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총재가 12일부터 사흘간 일정으로 열리는 세계여성포럼 개최를 위해 방한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로도 알려진 그는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과 함께 세계여성포럼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10일 오전 10시 이화여대 본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세계여성포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 왜 세계여성포럼 조직위원장 맡게 됐나?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은 다른 은행과 달리 여성에게 주로 대출하고 있다. 현재 730만명에게 돈을 대출해주고 있다. 이중 97%가 여성이다.

내가 어디를 가나 기자들이 '왜 여성인가'라고 질문한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이 있다. '남성들과 일을 하면 괜찮다'는 것(고정관념)이다. 여성과 일을 하면 웃긴 일, 이상한 일이 된다.

우리는 그라민은행이 생기기 전부터 왜 기존은행은 1%도 여성에게 대출해주지 않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대출자의 50%가 여성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쉽진 않았다. 여성들에게 대출해주러 갔을 때 그들은 두려워하며 남편에게 대출해달라고 했다. 그건 사회가 여성한테 말해줬던 것이다.


우리는 여성들이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이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때 "그건 우리가 수백년 동안 주입한 목소리이지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수세기 동안 주입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두려움이 없어졌을 때 여성들이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을 6년 동안 했다. 그 이후 50 대 50의 대출 비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성들을 통해 가정에 돈이 들어갔을 때, 남성한테 줬을 때보다 더 많은 성과가 있다는 것을 봤다. 그 이후 우리는 여성 대출에 집중했다.

돈은 힘이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강하다고 느끼게 된다. 은행 계좌에 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하다고 느낀다. 돈을 가지게 되자, 여리고 연약했던 여성이 자신이 강하다고 느끼게 됐다. 그들의 가정 내 지위도 달라졌다. 남편도 전과는 다르게 아내를 생각하게 됐다.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에서 25년 동안 크게 변한 점이 있다면 그건 여성의 권리 신장이었다. 이 점에 있어 마이크로크레디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권 신장으로 방글라데시에서 많은 변화가 벌어졌다.



특히 인구 증가율이 감소했다. 25년 전엔 한 여성엔 6.5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이것이 3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25년 전엔 매년 3% 이상 인구가 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1.4%다. 파키스탄, 네팔, 스리랑카보다 적은 인구증가율이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 그라민은행을 통해 돈을 대출해간 여성이 사용하는 분야는?

▶여성이 돈을 특이한 곳에 쓰지는 않는다. 가난한 여성들은 주로 농부한테 고용됐는데, 그라민은행은 여성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고용되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사업을 위해 직접 일하라고 했다.



여성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 대출로 자영업을 시작한 후 볏단을 다듬어 직접 쌀을 판다. 이런 일을 한 후 여성들의 수익은 6배가 증가했다.

여성들은 젖소, 닭 등 가축을 돌보는 일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은행에서 대출 받아 직접 자영업체를 차려 수익을 낼 수 있었다.

- 대출금 상환율은?



▶회수율은 남성과 여성이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효과는 크게 차이가 났다. 여자들이 돈 벌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곳이 아이들이었다. 여자들이 돈을 가지면 가계를 더 낫게 만드는 데에 돈을 쓰고 싶어한다. 또, 관리를 잘 해 최대한 효용을 누리고자 한다.

남성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과 가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남성들은 여자보다 인내심이 없어 미래를 위해 기다리기 보다 지금을 위해 돈을 쓰고 싶어 한다. 여자보다 신중하지 않게 돈을 쓴다. 여자들이 돈을 버는 것이 가정 개선에 영향력이 더 크다.

은행의 측면에서는 남, 녀 상환율이 비슷하지만 영향력 측면에선 여자에게 대출하는 것이 효과가 더 크다.



-이것이 방글라데시 경제에 미친 영향은?

▶빈곤율이 상당히 감소했다. 90년대엔 빈곤율이 1%씩 떨어졌다. 2000~2005년엔 평균 2%씩 감소했다. 2%의 빈곤감소율을 2015년까지 유지한다면 빈곤을 50%로 감소시키자는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MDG)를 성취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는 빈곤 감소를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황에 있다. 지난 25년 동안 평균 수명이 56세에서 65세로 증가했다. 방글라데시의 특이한 점은 남성이 여성보다 오래 산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산다.



교육적 측면에서 방글라데시는 현재 기초교육이 달성되어 모든 여아, 남아가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중학교에 갔을 때 여아들이 진학을 포기하는 것이었으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아들이 남아보다 더 진학을 많이 한다.

방글라데시 경제는 6.7%씩 매년 성장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 몇년 동안 경험한 일이다. 전체적으로 방글라데시 경제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여성들에 대한 영향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보건 부문에서 그랬다. 몇년 전엔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보다 방글라데시의 보건 수치가 좋지 않았다. 현재는 위 세국가보다 좋은 성적을 보건 부문에서 보여주고 있다. 유아사망, 산모사망에서 개선도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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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빈곤 퇴치력이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가?



▶방글라데시 상황을 보면 그렇다. 특히, 여권 신장이 인구성장률 감소에 영향이 높다는 건 학문적으로도 증명됐다. 많은 개발도상국의 인구성장율이 높은데, 방글라데시도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방글라데시가 인구저성장국가에 속하게 됐다.

많은 연구들이 왜 다른 나라가 아니라 방글라데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주목했다. 연구 결과, 다른 모든 영향보다 여권 신장의 영향이 높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성의 가족 내 지위가 향상되면 아이 숫자를 결정할 권한이 생긴다. 과거에 남성이 결정했던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정부에서 많은 보건 시설을 설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성이 거기에 가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방글라데시에선 빈곤 및 인구 감소나 보건에 여성(권리 신장)이 큰 영향을 미쳤다.



-금융소외층에 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은행 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 중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나머지 3분의 2를 은행 서비스로 수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금융서비스가 확산될 때도 여성에게 주로 (혜택이) 간다.

아이들에게 꿈을 그려보라고 하면, 여자아이들은 기업가를 그리지 않는다. 여성기업가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기본적 입장은 모든 인류는 기업가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능력을 타고 났고 그것이 인간의 내재적 능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기업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무도 그들 안의 재능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아들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기업가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라게 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라민은행의 소유자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대출자가 은행의 지분을 가지기 때문이다. 즉, 97%의 대출자가 여성이므로 소유자의 97%가 여성인 셈이다.

- 대출 받은 여성들이 진출하는 사업 분야는?

▶처음엔 닭 키우는 데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한다. 그라민은행 비판자가 주로 얘기하는 건 기초적 기술만을 가지고 동일한 싸이클(악순환)을 반복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정보기술(IT)를 여성에게 가르친다. 이것이 여성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라민은행이 96년 그라민폰을 설립하기 위해 방글라데시 정부에 이동통신사업자 면허를 신청했을 때, 정부는 확신하지 못했다.

우리는 시골에 휴대전화를 전파하고자 했다. 시골엔 유선전화기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시골의 여성이 그라민폰을 대여하면 전화기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이 여성의 전화를 쓰게 할 수 있다. 소득이 생긴다.



하지만 정부는 "여자는 숫자조차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숫자는 10개뿐이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여자들은 10분 안에 숫자를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여자들은 심지어 '시차'도 알게 됐다. 외국에서 온 사업자들도 시골에선 그라민폰을 이용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 빠르게 변한다. 가축만 키울 때와 달리 휴대전화를 줬을 때 여자들은 빠르게 변했다. 이젠 글자를 모를지언정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한단계, 한단계 기업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라민은행이 학자금을 대출해주면서 사람들은 학교를 더 많이 갈 수 있게 됐다. 현재 그들(여성들) 중 2명이 이화여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일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학교를 마친 후 어떻게 일자리를 구할까 걱정하고 있다. 나는 이들이 미래를 보는 방식을 바꾸고자 한다. 나는 그들에게 그라민의 아이들로써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스스로 결심하고 매일 이런 다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일자리를 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또, "다른 사람 말고 너희들의 어머니를 봐라, 너희 어머니가 은행(그라민)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돈 걱정을 할 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 한국의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은행에서 거부당하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하다. 뉴욕과 같은 경우라면 마이크로크레디트를 받았다고 가축을 키우지는 않겠지만 패션(옷)을 한다든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여성의 금융소외는 선진국에서도 일어난다. 4년 전 스위스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방글라데시 여성은 부유하더라도 돈을 빌리려면 은행이 남편의 허락을 요구한다"고 말했더니 한 스위스 여성이 "같은 이유로 남편을 데리고 은행에 간 적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은행권이 단 한 사람도 소외시키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후 달라진 점은?

▶내가 대학교에 교수로 있던 시절, 그 옆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사채업자들에게 착취 당하는 것을 보고 은행에 도와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내가 보증을 서겠다고 해도 은행은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전 세계적인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후 많은 문(Door)이 열렸다.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문제(금융소외)를 소개하게 됐다.

전에 사람들은 내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소개해도 믿지 않았다. 이제는 신뢰를 가지고 내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이 달라진 점이다.

-국내에 방글라데시 등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많은데.



▶돈이 힘(power)이다. 돈을 가지면 여러가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회에 있든지 돈을 가지면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 바깥에서 가정을 돌볼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건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방글라데시에서 겪은 것과 같은 어려움을 한국에서도 겪고 있다. 어떤 노동자는 가짜 서류를 제출해 이민법 위반으로 감금되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진짜 서류를 내주고 일하게 해줘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나아질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 등 선진국에) 일하러 찾아올 것이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 일자리를 찾아 경제적으로 큰 나라들을 찾아오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선진국들은 일할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편, 유누스 총재의 부인, 딸들은 모두 일하고 공부한다. 첫째 딸 모니카 유누스는 뉴욕에서 유명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비영리단체 '희망을 위해 노래하라'를 구성해 오페라가수들의 모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10월 12일엔 뉴욕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둘째 딸 디나는 비즈니스스쿨 학생이다. 부인인 아프로지 여사는 방글라데시에서 물리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유누스 총재는 11일 이화여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은 "유누스 총재는 빈곤 퇴치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으며 특히 극빈층 여성들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여성들이 경제 활동의 주역이 되도록 이끌었다"고 수여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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