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기후변화 정상 선언, '절반의 성공'

시드니(호주)=권성희 기자 2007.09.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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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일 이틀간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APEC)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기후변화에 대한 APEC 회원국 정상간 합의 내용이었다.

APEC 회원국들의 합의 수준이 2012년 교토의정서 체제가 마무리된 이후의 후속 체제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PEC에는 교토의정서 체제에 참여하지 않았던 미국, 중국, 호주, 인도 등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역시 교토의정서 이후 기후변화 협약 체제에 대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견해차는 컸다.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각 국가별 상이한 상황을 존중해 신축적으로 접근하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양분해 차별화된 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했다.

개도국은 교토의정서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인 셈이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과 개도국간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가져야 한다는 유엔기후변화 협약의 기본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차별화된 가스 배출 감축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선진국들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기본원칙을 기초로 하되 광범위한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 수준인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차이만이 아니라 각 국가의 산업구조와 경제 상황 등 다른 차이도 두루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국 등 개도국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기본 원칙에 따라 먼저 선진국이 의무를 부담하면 개도국은 이에 상응해 여건에 따라 의무를 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아울러 개도국들의 기후변화 대응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기술이전과 자금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 개도국의 양분체제가 아니라 각국의 경제체제나 경제 발전 단계, 산업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좀더 세분화된 체제가 필요하다는 선진국 입장에 동의하는 쪽이다.


정부 관계자는 "교토의정서에서는 우리나라가 개도국에 포함되지만 이후 체제에선 개도국에 포함되기 어렵기 때문에 선진국 대 개도국 양분체제는 우리나라 국가 이익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는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수치로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결국 가스 배출 감축 목표는 기후변화에 대한 정상 선언문에 포함되지 못했다.

다만 국내총생산(GDP) 1000달러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의 양인 에너지 집약도를 2030년까지 최소 25% 감축시키고 2020년까지 최소 2000만 헥타르의 산림을 조성한다는 2가지 목표는 설정했다.

그러나 이 2가지 목표는 각국에 구속력이 없는 '노력한다'는 수준의 합의다. APEC이 협상 기구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통의 방향을 합의해 제시하는 협력체라는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전세계가 급격한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에 비쳐볼 때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와 관련, 조태열 통상교섭조정관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구속력 있는 목표치에 합의하진 못했지만 에너지 집약도와 산림 조성 목표에는 합의했기 때문에 성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APEC 정상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선언문을 채택했다는 것 자체가 오는 12월 발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다는 점은 향후 교토의정서 이후 체제에 대한 협상 전망을 밝게 해준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9월27~28일 17개국의 소규모 기후변화 회의를 주관하기로 하는 등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드러났듯 가스 배출 감축 등 구속력 있는 의무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개도국간 의견차가 여전히 심해 앞으로 기후변화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합의를 도출해낼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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