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파업 굴레 벗어던졌다

머니투데이 김용관 기자 2007.09.0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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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관계 새로운 전기 마련… 연말 노조지부장 선거가 관건

현대자동차가 숙명처럼 여겼던 '파업'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졌다. 10년만이다.

지난 1997년 이후 10년만에 파업없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현대차 (277,500원 ▲1,500 +0.54%) 노사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이다.

현대차는 최근 품질 개선에도 불구하고 파괴적인 노사 관계, 낮은 브랜드 인지도, 해외 경쟁업체들의 추격과 견제 등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무분규'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지 않으면 지난 30년동안 쌓아온 노력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노사 모두 공감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노사, 강력한 무분규 의지 = 이번 무분규 합의의 배경에는 노사 양측의 강력한 의지가 자리잡고 있다. 교섭 결렬 이후 쟁의 조정기간에도 노사 양측의 실무자들은 매일 만나 대화를 시도하는 등 협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선 사측은 극적인 타결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파업 뒤 최종 합의안을 내던 관례를 깨고 미리 동종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높은 임금 인상 등을 제시했다. 이는 회사측의 성실교섭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사측은 또 쟁의 조정기간 중에 유례없이 본교섭 재개를 요청하는 등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펼쳤다. 이 회사 노사가 쟁의조정 기간이 끝나기 전에 교섭을 재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과거의 협상에서 '선파업 후협상'이라는 틀을 고수하던 노조측도 올해는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한 후에도 휴일특근은 거부하되 잔업은 거부하지 않는 등 생산차질을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확보하고서도 사측의 재협상 요구에 응해 파업을 유보하고 대화에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에서 가결된 뒤 곧바로 파업에 들어가지 않고 파업을 연기한 것은 노조 20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이와 함께 노조 내부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파업 반대 분위기도 협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87년 노조 설립 이후 19년간 강행된 파업 후유증에 시달리던 노조원들이 새로운 변화를 열망했다는 사실도 무분규 타결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파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울산시민과 부품업체는 물론 온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노사 모두를 압박했다. 특히 현대차를 아끼는 수많은 고객이 하나둘씩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우려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가결되자 각종 포털 사이트 등에 ‘현대차를 사지 않겠다’는 의견이 속속 올라오는 등 현대차 노사로서는 주위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내수시장에서는 현대차의 일부 주력 모델이 경쟁모델로부터 위협받기도 했다. 특히 3000만원대 대중차를 앞세운 수입차 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는 등 내수시장 수성이 발등의 불로 떨어지면서 파업자제에 무게를 실어줬을 것으로 풀이된다.

◇파업 악순환 벗는 계기되나 = 이번 무분규 타결은 현대차를 '연례 파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번 무분규 타결의 정신을 향후에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냐는 점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화와 협상만으로도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귀중한 선례를 남겼다"며 "앞으로 펼쳐질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 등 각종 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설립 이래 1994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한 차례 이상 파업을 강행, 지금까지 총 347일간 파업을 벌여 10조9205억원의 매출 손실을 초래했다. 파업이 파업을 부르는 형국이었다.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손실이었다. 대내외적인 브랜드 이미지 및 신뢰도 하락, 소비자 외면 등 파업에 따른 후유증은 현대차의 근간을 흔들 만큼 위협적이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무분규 타결은 현대차 노사상생의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현대차 노사가 어렵게 마련해낸 상생의 문화가 현대차의 안정적인 성장과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올 연말로 예정돼 있는 노조 지부장 선거를 앞두고 노조 계파 간 선명성 경쟁이 벌어질 경우 이같은 무분규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4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1층 아반떼룸에서 제 12차 본 교섭에 들어가고 있다. ⓒ울산=뉴시스▲현대자동차 노사가 4일 오후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1층 아반떼룸에서 제 12차 본 교섭에 들어가고 있다. ⓒ울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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