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야기] 주식 전체주의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7.09.0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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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을 반복하던 금융시장이 지난주엔 선순환 구도로 전환됐다. 폭락하던 주가는 급등세로 돌아섰으며 급등했던 환율은 하락세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주가가 빠지고 환율이 급등하는 것을 악순환, 그 반대로 주가가 뜨고 환율이 하락하는 것을 선순환이라고 단언할 근거는 없다.

전세계 대부분이 넘치는 돈으로 주식과 주택 등 자산을 사고, 그 자산이 가치를 높이면서 투자소득을 높이고, 富의 효과로 인해 소비 여력이 높아지면서 경기가 호황을 누리는 일련의 과정은 그린스펀 전 연준리 의장시절부터 현재까지 20년간 미국식 자본주의와 세계 경제를 이끌어 왔던 모체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롱텀캐피털의 파산, 2000년 초 터진 닷컴버블, 2001년 9.11 테러, 그리고 서브프라임으로 대변되는 부채담보부증권(CDO) 부실 등 일련의 사태에서 미 백악관과 연준리는 해결사 및 구제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어떠한 문제가 터지더라도 전세계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붕괴를 막고 정상화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이 차있기 때문에 이제 시장은 부침이 있더라도 자산가치 상승세가 지속되는 쪽을 선순환 세계로 인정하고 있다.



원래 물가와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를 유지하는 한 자산가격은 상승하는 게 논리에 맞다. 하지만 경기사이클과 밸류에이션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인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과열된 경기가 정화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성장 감소로 가는 것을 의도적인 조치를 취해 둔화(소프트랜딩)로 틀어막으면서 또 다시 과열을 불러내는 정책은 결국 엔진폭발 위험을 높이는 일이다.

한국의 주식 애널리스트들이 유독 바보집단은 아닐텐데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작업을 하고 있음이 입증된다.
이들이 세간에 뭔가 전망을 내놓을 땐 전문성을 갖춰 파악하고 분석했다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그럴듯한 주장을 한다.
그러나 주가가 고공행진에 돌입해서 에너지가 소모될 때조차 고점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목표치를 더 올려서 보다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야만 하는 조직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반대로 주가가 폭락한 뒤엔 자신들이 몸담은 기관이 물량을 확보할 때까지 주가가 뜨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어떻게든 기간조정과 레벨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주가상승을 불신한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을 때 양심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1630선으로 폭락할 때 벙어리가 됐고 일부 애널은 반성문이라는 시답지 않은 글을 내기도 했다.


미국 금융기관도 다르지 않다. 프라임 모기지 대상이 한도에 차자 알트A와 서브프라임까지 만들어서 투자자를 유혹했다.
1억달러짜리 모기지풀을 유동화작업 통해 처분하면 10%의 수수료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투자등급을 매긴 신용평가사들은 2~3%의 수수료를 챙겼다.

주간사가 인수와 판매를 넘어 보유했던 투자자산은 이제 부실자산으로 탈바꿈됐고 정당한 손실을 평가할 수도 없는 지경에 처했다. 겉으로는 3분기 예상이익의 절반이 감소할 것이라고 하지만 보유자산의 내역과 시장가치를 공개하지 않을 뿐더러 평가기준 자체가 자의적이기 때문에 의구심을 떨칠 수는 없다.
주가 상승을 위해선 어떤 것도 따지지 말고 덮어두자는 분위기가 횡행하지만 엔론사태로 밝혀진 회계부정보다 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 기업의 이익도 가관이다. 주식투자 평가익을 빼고 본연의 영업활동에서 얻는 이익은 절반도 안 된다. 증시추세가 반전된다면 중국 증시 거품은 아마도 미국발 위기를 능가하기 충분할 것이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나 호주 상황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전세계 모든 금융업, 제조업이 20년 활황의 증시 상승세에 올인하고 있는 셈이다. 전세계가 주식 전체주의에 빠져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하지만 인간세계엔 허구가 많다. 유구한 인류 역사에서 과학기술, 수학, 자본시장, 네트워킹의 발달은 혁명적이지만 철학은 수천년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다.
펀더멘털 개선없이 시장이 커지는 것, 금융이 실물을 지배하는 것, 주가가 경기를 좌우하는 것. 이런 것이 새 패러다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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