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대주주 IPIC의 속셈은?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2007.08.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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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에 우선매수권 있는데도 공개입찰로 가격올려받기..경합 시들할 듯

대주주인 아랍에미리트의 IPIC가 현대오일뱅크의 지분매각을 추진중인 가운데 IPIC의 최근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매각 방식과 매각지분 규모 뿐만 아니라 매각주간사와 홍보대행사 선정에 이르기까지 업계에 얘기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매각방식이다. IPIC는 현대오일뱅크의 2대 주주로 우선매수권을 갖고 있는 현대중공업 (158,800원 ▲1,300 +0.83%)을 제쳐 두고 공개입찰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최종 매각대상자를 결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현대중공업과 가격절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재 거론되고 있는 코노코필립스, GS칼텍스 등 인수후보들이 IPIC와 가격협상을 마쳤다고 해도 현대중공업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면 지분인수는 불가능하다. 인수후보들로서는 인수를 위한 시간과 에너지만 소모한 채 아무런 소득이 없을 수도 있는 셈이다.

IPIC가 이같은 방식을 택한 것은 '가격 올려 받기 노력'으로 분석된다. IPIC로서는 현대중공업과 배타적 협상을 하기 보다는 공개입찰을 통해 인수후보들을 모아 놓고 이들이 제시한 가격만큼 현대중공업에 대해 가격을 요구하는 것이 유리하다.



나아가 IPIC는 "영향력 있는 소수지분만 보유하겠다"며 지분 50%까지 매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역시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가격을 올리겠다는 것으로 포석으로 풀이된다.

20% 가까운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보유한 현대중공업의 경우 35%의 지분만 사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IPIC가 우선협상대상자에게 50%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나선다면 현대중공업의 가격협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현대중공업은 IPIC가 보유한 지분 70% 중 50%까지 우선매수권이 있어 결심만 하면 현대오일뱅크를 품에 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수대금 이외에도 고도화 설비 등에 추가로 수조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대중공업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IPIC가 여러모로 협상구도를 유리하게 몰아가려고 하고 있지만 문제는 인수후보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적절한 가격을 썼다가 현대중공업이 그 가격대에 사겠다고 나서면 들러리만 서는 셈이고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현대중공업이 포기하면 그 가격대에 사야 되는 것.

IPIC는 "복수의 회사들이 매각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인수후보들에게 불리한 협상구도로 인해 입찰경쟁이 그다지 치열하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STX그룹은 같은 조선업계인 현대중공업의 우선매수권으로 인해 현대오일뱅크를 처음부터 넘겨다 보지 않았고 롯데그룹은 지분 인수 검토 사실을 부인했다. GS칼텍스도 시장에 알려진 것만큼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미국계 코노코필립스가 가장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실사를 하고 협상을 벌일 당시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는 우선매수권의 존재를 알았던 코노코필립스의 입찰 참여에 대해 'IPIC의 바람잡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IPIC가 공개입찰을 추진하면서 매각주간사로 모건스탠리를 선택한 부분도 업계에 회자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개별협상을 하는 것보다 수수료 등 비용은 더 들지만 가격은 더 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아랍자본이 유태계 투자은행을 골랐다는 점이 이채롭다"는 것.

IPIC가 지분을 매각하려는 시점에 홍보 대행사를 선정한 점도 눈에 띤다. 현대오일뱅크는 "IPIC가 지난주 에델만월드와이드코리아를 홍보 대행사로 정해 매각관련 질의에 대한 창구를 단일화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IPIC가 일부에서 제기됐던 '먹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IPIC의 카뎀 알 쿠바이시 사장은 지난달 아랍에미리트와 한국의 관계가 좋다는 지적을 하며 "우리는 론스타와 다르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 IPIC는 2011년까지 현대오일뱅크 공장이 있는 서산에 22억 달러를 투입해 정유 고도화시설 증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그러나 경영권도 매각할 수 있음을 내비친 IPIC가 내년부터 시작하는 고도화시설 투자를 실제로 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 에델만 관계자는 "IPIC는 전세계적으로 정유회사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 있어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차원"이라며 "일부에서 보도된 것과 달리 IPIC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소수지분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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