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문제는 일자리야, 이 바보야!

머니투데이 홍찬선 경제부장 2007.08.2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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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新성장방정식=f(투자, 일자리, 사회보장)

[광화문]문제는 일자리야, 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Economy, Stupid!).’

이 간단한 말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빌 클린턴 후보(민주당)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상대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막강한 현직 대통령이던 조지 부시 후보(공화당)였다는 점에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승리였다. 외교와 전쟁에서 아무리 화려한 성과를 거뒀다 해도 국민의 생활을 어렵게 만든 사람에게는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냉엄한 재판이었다.

경제가 정권의 향배를 결정한 것은 1997년 12월에 치러진 15대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국민경제를 수렁에 빠뜨리고 경제주권을 IMF(국제통화기금)에 넘겨주고서도 선량한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와 잠자리를 빼앗아 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에 대한 심판이었다.



오는 12월19일에 치러지는 17대 대통령 선거도 경제가 핵심쟁점이 되고 있다. 이미 한나라당 주자로 확정된 이명박 후보는 물론 경선를 치르고 있는 민주신당과 민주당 및 민노당 예비후보들도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 심기에 열성적이다.

하지만 ‘경제 살리기’를 위해 내놓는 대책들은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경제적 합리성으로 따져볼 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한나라 대운하’라든지, 전세보증금이나 임대료를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등, 유권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대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은 경제 살리기 중에서 ‘일자리 창출’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운의 뜻을 품고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취직하지 못하는 ‘이태백’과 한창 일할 나이에 일자리를 잃고 자녀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오정’들에게 꿈(미래 설계)과 현실(밥벌이)을 함께 제공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해선 고용효과가 큰 부문에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게 급선무다.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은 기업의 투자였다. 비록 과잉투자와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있었지만,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이끈 것은 능력에 부치는 과감한 투자였다.

돈(자본)과 기술은 없었지만 오로지 ‘해보자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열정’만으로 철강(포스코) 조선(현대중공업) 자동차(현대자동차) 반도체(삼성전자) 등에서 글로벌 우량기업을 키워냈다. 기업가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과 그것을 지원해준 정부 정책 및 정책과 기업가를 믿고 저임금을 오랫동안 참아준 근로자들의 희생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정반대다. 기술도 있고 돈도 많지만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설비투자 증가율이 과거에는 적어도 15%는 됐지만 요즘은 높아야 6~7%다. 기업가들은 ‘애니멀 스피리트’를 잃었고, 정부는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근로자들은 생산성 증가율보다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있는 탓이다.

이태백과 사오정의 고통을 하루빨리 해소하려면 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경영권 불안이고, 둘째는 과도한 임금상승(비탄력적 노조 포함)이며 셋째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동산값이다. 땅값과 임금으로 인해 높아진 창업 장벽을 뚫고 사업에 성공하더라도 경영권을 언제 빼앗길지 모르기 때문에 애니멀 스피리트는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요즘 과잉유동성이 골칫거리다. 한은이 뒤늦게 과잉유동성의 폐해를 시정하고자 7월과 8월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지만, 공교롭게 터진 서브프라임모기지 문제로 오히려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시장의 압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값은 더 올라 투자를 더욱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과잉유동성은 기업이 투자하지 않고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탓도 크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모 씨는 과잉유동성 해소 방안의 하나로 병원 설립 자유화를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병상 300개짜리 병원을 세우면 일자리가 4000 개 가량 생긴다. 병상 1개당 의사 간호사 간병인 청소부 등 13명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병상 1개당 겨우 1.8명의 고용이 창출될 뿐이다. 이런 규제를 없애면 병원이 많이 생겨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SERI)에 따르면 국내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좋아하는 4자 성어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을 가진 이 말을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중시하라는 것’으로 새기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어려워지면 기업가보다 근로자들이 더 힘들게 된다’는 속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외환위기 때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은 평생 열심히 일한 샐러리맨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번 대선 결과를 좌우할 캐치프레이즈도 이런게 되지 않을까?

"문제는 일자리야, 이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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