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활성화 위해 경영권방어책 마련"

대담=홍찬선 경제부장, 정리=이상배 기자 2007.08.2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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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영불안·투자부진으로 기업 조로"'

"재벌에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대신 고용창출 약속 받아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44세)는 23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회적 대타협'을 촉구했다. 그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재벌과 국민이 서로 밉다며 함께 침몰하는 형국"이라고 표현했다.

장 교수는 또 정부의 서비스업 육성 정책에 대해 "우리의 강점은 제조업에 있는데, 그걸 버리고 왜 서비스업을 키워야 하느냐"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어서 제조업이 강해야 서비스업도 강해진다"고 했다.



그는 "무조건 금융시장을 개방하면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금융서비스 육성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이라고도 했다.

"투자 활성화 위해 경영권방어책 마련"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경영에 대해 장 교수는 "전세계에서 그 기준에 맞는 자동차 회사는 제너럴모터스(GM) 뿐인데, 경영은 GM이 제일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주인인 주주인데, 제일 주인의식이 없는 것도 주주"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과 관련, 장 교수는 "오히려 배당,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의 돈이 빠져 나간다"며 "지금의 주식시장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죄수의 딜레마'에 빗대기도 했다.

지난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던 장 교수가 신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영문)을 출판하고 모국을 찾았다. 홍찬선 경제부장이 장 교수를 만나 한국경제의 문제와 발전방향 등에 대한 고견을 들어봤다.

다음은 장 교수와 머니투데이 홍찬선 경제부장이 나눈 일문일답.


- 홍: 올해 4%대 중반의 경제성장이 예상된다. 정부는 "과거에 비해 낮은 성장률이지만,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낮지 않다"고 한다. 어떻게 보나
▶ 장: 우리의 능력에 맞게 평가를 해야 한다. 선진국보다 높다고 하는데, 이는 매번 시험에서 90점 받던 아이가 70점 받고는 "60점인 아이들도 많다"고 하는 것과 같다.

소득이 올라가면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제는 순식간에 그렇게 됐다는데 있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투자 부진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에서 설비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7%로, 외환위기 이전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설비투자가 안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국제 경기가 냉각될 때 수출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지금처럼 성장할 능력이 없다는게 문제다.

-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 들어 경제가 좋아졌다는 근거로 주가 상승을 강조하는데
▶ "주식시장 좋으니까 경제 좋다"고 하는 것은 문제다. 주식시장이 단기적으로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과 관계없다는 것은 주류 경제학자들도 인정한다. 주가가 일정기간 동안 좀 올랐다고 경제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심지어 "주가는 장기적으로도 경제와 관련이 없다"고까지 했다.

또 지금 주식시장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더 이상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아니다. 오히려 배당, 자사주 소각 등으로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의 돈이 빠져 나간다. 그렇게 바뀐 주식시장이 우리 기업을 좋게 평가한다고 우리 경제를 좋게 평가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 외환위기가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앗아 갔다는 지적이 있다.
▶ 맞다. 과거 부채비율을 낮추려는 노력을 해서 많이 낮췄는데, 사실 과거에도 지나치게 높은 것이 아니었다. 교정이 필요했더라도 지금은 완전히 반대로 갔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아직 미국 일본 스위스의 3분의 1이다. 더 추격을 해야 하는데, 기업의 부채비율은 오히려 미국보다 더 낮다. 미국보다 돈도 더 빌리고 더 많이 투자해야 하는데, 반대로 미국보다 돈도 덜 빌리고 이제는 성장률도 비슷해지려고 한다.

경제가 조로했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보수화되고, 나태해진 것이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먹구름이다.

- 기업들은 투자를 안 하는 것이 신 성장동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 경험많은 기업가들이 신 성장동력을 왜 못 찾겠나. 만약 정말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다면 벤처기업들이 어떻게 생기나. 기업가들이 '애니멀 스피리티'(기업가 정신)를 잃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자신감도 의지도 없는 것이 문제다.

- 정부는 제조업의 성장 둔화에 대한 대안으로 서비스업 육성에 주력하는데
▶ 왜 잘 하고 있는 제조업 대신 서비스업을 육성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강점은 제조업에 있다. 그걸 버리고 왜 서비스업을 해야 하나.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라는 것이 다 제조업 회사에 팔아 먹고 사는 것이다. 제조업이 강한 나라들이 서비스업도 강한 것도 그래서다. 영국의 서비스업이 강한 것도 과거 제조업이 강했기 때문이다.

스위스가 관광산업으로 먹고 산다지만, 사실 스위스는 세계 최고의 공업국이다. 1인당 공업 생산량이 미국의 2배이고, 일본보다도 1.5배가 많다. 싱가포르도 서비스 국가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우리나라보다 1인당 공업 생산량이 많다.

또 서비스업은 아무나 하나. 30년 대계를 만들어 금융인력을 키워야 한다. 영어도 잘 해야 한다.

무조건 금융시장 개방하면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세계금융의 1차 중심지로 뉴욕 런던, 2차 중심지로 도쿄 파리가 있고 여기에 홍콩 싱가포르도 있다. 그런데 어느 금융자본이 한국으로 오겠는가. 또 괜히 열었다가 외국인들만 과실을 모두 독식할 수도 있다.

-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견해는
▶ 과거 우리나라 재벌들이 자기자본이 없는 채로 몸집을 키우다 보니 순환출자 등을 통해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꾸려왔다. 그 전제조건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적대적 M&A가 가능해지면서 취약한 지배구조가 됐다.

적대적 M&A가 가능한 상황에서 지배구조를 고치라고 압박하면 자칫 지배구조가 와해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 경영이 점점 소극적으로 바뀐다.

-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학장 등의 주주자본주의 운동에 대한 견해는
▶ 재벌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것이 국민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주주자본주의의 역설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가 제일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주주들은 마우스 클릭 하나로 회사를 떠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그런 고민없이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로 갔다. 그러다 보니 주주들의 단기주의적인 요구가 높아졌다. 그것 때문에 이윤이 높아도 투자를 안 하는 문제가 생긴다.

포스코도 무조건 순이익의 50% 이상을 배당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때론 배당을 하지만, 때론 아예 배당을 안 하고 투자를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많은 주주들은 기업에 대해 단기적으로 이윤도 많이 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기업들이 투자 안 하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만 고용하는 것 아닌가.

-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이즌필(특정주주들에게 언제든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독소조항')과 같은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장치가 필요하다고 보나
▶ 그렇다. 확실한 경영권 방어장치가 있어야 한다. 각 나라마다 경영권 방어장치들을 두고 있다. 스위스는 차등 의결권 제도를 만들어 뒀고, 일본은 상호주 보유를 통해 기본적으로 50% 정도는 우호지분으로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브레이크가 있어야 차를 빨리 몰 수 있는 것처럼 기업도 상황이 닥치면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보수적인 경영을 할 수 밖에 없다.

- 정부는 포이즌필 등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장치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며 반대하는데
▶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 사실은 미국 방식일 뿐이다. 가족 소유 또는 정부 소유 없이 '주주중심의 순수 민간 소유'로 가는 것이 미국식이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그런 기준에 맞는 자동차 회사는 제너럴모터스(GM) 하나 뿐이다. 그런데 경영은 GM이 제일 못한다.

미국의 포드도 창업주 가족들이 황금주를 갖고 있다. 프랑스의 푸조는 가족 지배회사고, 르노는 정부가 최대주주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들도 이런 식이다.

- 최근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 문제로 국제금융시장이 큰 불안을 겪었는데
▶ 지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예측하기 힘들지만, 문제가 심각하긴 한 것 같다. 오죽하면 유럽연합(EU)에서 신용평가사를 조사하겠다고 까지 했겠는가.

이런 문제로 금융시장이 경색되고, 실물경제에서 수출까지 어려워지면 우리도 안전할 수 없다. 자본시장이 개방돼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오는 충격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엔 캐리트레이드'(저리에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기법)도 상당한 규모라는 것만 알 뿐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 주식시장도 거품이 많이 끼어있다. 지금은 상당히 불안한 시기다.

전세계에서 매년 무역을 위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외환의 규모는 전체 금융시장에 돌고 있는 외환 가운데 100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금융거래를 위한 거래일 뿐이다. 금융공학적으로 돌아다니는 돈이 많아서 이제는 펀더멘털만으로 경제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 최근 한국은행이 콜금리 목표치를 또 한번 인상했는데, 그에 대한 견해는
▶ 그동안 우리나라도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유동성을 많이 풀어서 해소를 하긴 해야 한다. 유동성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과잉 유동성을 놔두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같다. 온 국민이 영어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각자 전공에 투자하는 것이 전국민에게는 이득이다. 일본은 그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적으로 좀 더 영어 더 잘하면 이득이니까, 서로 영어 공부만 하고 다른 공부를 안 한다.

영국의 대학에 있기 때문에 유학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성공하는 사례만 많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국가적으로도 낭비고,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경우들이다.

교육 평준화가 장점도 있지만, 지금은 단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미술이나 음악 등 전인교육도 강요하면 오히려 가난한 아이들이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 한국 경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제언을 한다면
▶ 지금 대한민국은 서로 밉다며 함께 침몰하는 상황이다. 재벌과 노조, 국민과 재벌 등이 그렇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재벌에 경영권을 보장해주고 대신 재벌로부터 고용 창출 많이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노조도 파업을 자제하는 약속을 하는 대신 재벌들로부터 뭔가를 받아낼 수 있다. 지금처럼 상대방이 약해지는 것만 보고 박수치다간 같이 망한다.

또 국민들의 고용을 안정시켜 줘야 한다. 실업과 생계 등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가 해결된다.

세상에 이공계 1등에서 1000등까지 모두 의대를 가는 나라가 어디있나. 수요-공급 법칙에도 안 맞는다. 지금은 의사 수가 많이 늘지 않았나. 그런데도 고용불안을 겪는 부모들은 "너는 회사 들어가지 말고, 자격증 따서 의사하라"고 한다. 국민들도 미래가 불안하니까 가장 보수적인 결정을 하는 것 아니겠나.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루 빨리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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