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야기]이제 정신 좀 차렸을라나

머니투데이 홍재문 기자 2007.08.1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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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자 다들 경악했다.
70%였던 적립식펀드 수익률이 10%로 곤두박질쳤으며 직접투자로 1년간 쌓아 올렸던 평가익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사람도 나왔다.
깡통계좌가 속출하고 반대매매를 당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무식하게 7월의 거품랠리에 뛰어들었던 개미들은 당해도 싼 일이다.

원/달러 환율은 마침내 연고점을 넘었다. 이미 바닥을 쳤고 오르는 일만 남았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어도 아랑곳하지 않다가 허겁지겁 달러를 주워담기에 바빴다.
선물환 매도헤지를 할 때가 아니고 오히려 매수헤지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했어도 줄곧 매도만 고집하던 기업들은 이제 커져버린 평가손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저점대비 100원 이상 폭등한 원/엔 환율은 무분별하게 엔화를 차입했던 자들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100엔당 750원에 불과한 환율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단언했어도 끝내 대비를 하지 않고 버티다가 일순간에 넋이 빠졌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될 경우 파급효과가 지대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됐다.
엔캐리가 이뤄질 때는 엔화 이외의 각종 통화로 분산되기 때문에 엔화 환율들이 조금씩 오르지만 엔캐리가 청산될 때는 처분하는 모든 통화의 상대 통화가 엔화로 집중되기 때문에 한순간에 엔화 환율이 폭락하는 것을 정확히 지켜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미국이 결자해지에 나서면서 사태가 수습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긴급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재할인율을 인하했다. 유동성 공급으로도 주가 하락이 잡히지 않자 콜금리 인하의 전단계인 비상수단을 강구한 것이다.
아무리 증시에 거품이 끼었다고 해도 최근 주가 급락 또한 비이성적으로 과도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FRB의 이 같은 조치는 증시 방향을 돌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보다 앞서 재정경제부는 서울외환시장 개입을 시사했다. 원/달러 환율 급등은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것이 정상화되는 것으로써 바람직한 일이지만 주가 급락을 야기시키는 부작용을 방치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놔둬도 오를 환율이기에 일단 연고점이 돌파되는 정도의 상황까지 맛보게 한 뒤 진정책을 사용하면서 주가 회복을 지원하고 대기하고 있는 달러매수세력에게 찬찬히 달러를 살 기회를 제공하는 시기적절한 조치였다.

이제 주가가 일방적으로 오르지만은 않고 하락세로 돌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됐을 것이다. 주가가 2000선으로 오를 당시 어떠한 악재조차도 호재로 둔갑시키는 등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설파하면서 증시 대세론을 주장했던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들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원화 환율은 다시 하락세를 보이겠지만 기본적인 방향이 상승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을 것이다. 기존의 매도헤지가 정당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조선업체들은 그게 진정한 헤지가 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코스피지수가 다시 2000을 넘어 사상최고치를 경신할지 모른다. 원/달러 환율은 또 한번 920원대로 레벨을 낮출 수도 있다. 엔/달러 환율은 다시 120엔대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때가 돼 이번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을 망각한다면 이보다 더한 상황에 무릎을 꿇을지 모른다.

일단 시장이 치유는 되겠지만 복잡성과 레버리지로 점철된 전세계 금융시장의 투자 행태는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며 중앙은행과 정부당국의 무소불위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온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자산유동화의 문제, 그리고 각종 레버지리와 엔캐리 트레이드로 이뤄진 방만한 유동성은 처음으로 경고신호를 보냈을 뿐이다.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넘어 대출담보부증권(CLO)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차입인수(LBO)와 인수합병(M&A)이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상품구조는 결코 풀 수 있는 성질이 아니며 유동성은 언젠가 허공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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