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받는 차별시정…제도설계에 문제?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7.08.0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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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 단 3곳서만 신청·실효성 논란 증폭

비정규직법의 핵심인 차별시정 제도가 시행된지 한달이 지났음에도 신청 실적이 여전히 저조해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5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차별시정 신청이 접수된 사업장은 올해 7월부터 적용 대상이 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 1982곳 중 단 3곳에 머물고 있다.



농협중앙회 고령축산물공판장 소속 비정규직 19명이 지난달 24일 차별시정을 처음으로 신청한뒤 조은시스템 비정규직 1명(7월25일)과 한국철도공사 비정규직 6명(8월1일)이 낸게 전부다.

노동부는 제도 시행 전에만 해도 정규직에 비해 임금과 처우 등에서 과도하게 차별받아온 비정규직들의 차별시정 신청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했었지만 정 반대의 결과다.



특히 대부분 민간기업의 급여지급일인 지난달 25일이 지나면 월급명세서를 근거로 한 차별시정 신청이 밀려들지 않겠느냐는 희망적인 기대를 했지만 이 마저도 더이상 바랄 수 없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노동부 안팎에서는 차별시정 제도 설계가 현실과 괴리돼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항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개인으로 차별시정 신청권을 제한해서 이런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사실상 비정규직에게 차별시정 신청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의 보호막이 될 수 있는 노조 등 집단적 차원의 신청이 가능토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박사는 "회사를 그만들 각오가 없다면 비정규직 개인이 회사와 맞상대하는게 불가능하다. 노조와 연계를 허용하는 방안 등이 추가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비정규직의 차별시정 신청 외면이 더 길어진다면 정부도 제도개선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당분간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노동부 간부는 "차별 시정이 근로조건이 각각 다른 개별 근로자에 대한 권리구제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해 집단적 신청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제도정착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기 법개정 요구를 반박했다.

차별시정 신청을 이유로 사업주가 부당한 조치를 취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강력한 제재조항을 둬서 신청인을 보호하는 점도 노동부는 강조하고 있다.

경영계도 노조에 차별시정 신청권을 부여하면 차별시정 남발로 인해 노사간 갈등만 양산될 것이라는 이유로 노동부의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축산물공판장과 철도공사 비정규직의 경우 형식상 개별 명의 신청이지만 동일사안에 대한 집단적 차별시정 성격이어서 차별신청권 범위에 대한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중앙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차별시정 신청의 적격 여부 및 차별 유무를 차별시정위원회에서 면밀히 판단해 결론을 내리게 된다"며 "시정명령이 내려져 실효성이 알려지면 신청건수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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