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7.08.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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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가끔 시를 접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며칠전 점심 약속때였습니다. 약속장소를 세종문화회관 뒷편의 작은 공원으로 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조금 먼저 도착한 듯 했습니다. 약간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 때, 공원 맞은편 건물앞에 서 있는 시비(詩碑)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담겨 있는 시는 박목월의 '나그네'였습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함께 낮술 한 잔 걸친 기분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이 시를 참 좋아했었습니다. '나그네'는 조지훈이 보낸 시 '완화삼'에 대한 박목월의 답시입니다. 조지훈은 "압운(押韻)이 없는 현대시에도 이렇게 절실한 심운(心韻)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는 찬사를 보낸 바 있지요.

개인적으로도 외적 운율이 있는 시를 좋아합니다. 특히 김소월의 시가 좋습니다. 잘 알려진 '진달래꽃' 말고도 소월은 주옥 같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모두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 가운데 '가는 길'이라는 시를 특히 좋아합니다. 예전 '가는 길'을 처음 읽었을 때 묘하게 슬픈 기분에 젖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문학청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전엔 종종 시집을 펼쳐 읽었습니다. 가끔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하면 수첩에 적어보기도 했지요. 그럴 때마다 주변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낭만적'이라는 극히 일부의 긍정적인(?) 평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시를 읽는 모습에 대해 한가한 소일거리 정도로 치부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선현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칼릴 지브란은 "시는 전체에 대한 이해이다. 부분밖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시를 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훌륭한 정신과 훌륭한 시적 재능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인간이 성취하고 창조하는 모든 것의 뿌리는 시와 사랑의 강에 있다." 공자께서는 시경에 담긴 300편의 시를 통해 '사무사(思無邪)'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 속에 담긴 생각에는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지요.

이 생각들을 모두 합쳐보겠습니다. '사람은 시를 통해 남을 위하는 선한 마음과 완성된 인격, 전체를 읽는 통찰력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력을 배우게 된다'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조금 관념적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시는 참된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덕목을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시를 읽는다는 건 결코 한가하거나 단지 멋스러움만을 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는 통 시집을 보지 않게 됐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시를 읽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들 바쁜 일상에 치여 시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여유와 아름다운 마음과 새로움을 위한 활력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완화삼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개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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