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짝퉁을 위하여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2007.07.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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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끝난 한국과 유럽연합(EU)간 자유무역협정(FTA) 2차협상의 쟁점 중 하나가 이른바 짝퉁상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EU는 한국에 짝퉁상품에 대한 처벌을 고소·고발 없이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 같은 주장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EU의 짝퉁상품들이 다른 나라에 수출돼 자신들의 이미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서지만 한편에선 매년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명품시장을 노린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3국은 세계 명품업체들이 군침을 흘리는 최대 시장 중 하나입니다.
 
명품을 사기 위해 식사를 라면으로 때우는가 하면 일본에선 일부 젊은 여성이 원조교제에까지 나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명품을 사다보니 이제 명품은 젊은층의 유니폼처럼 돼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명품을 소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명품 소비에 대한 열망은 강한 데 경제적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다보니 짝퉁 핸드백, 짝퉁 구두가 활개를 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짝퉁이 진품과 너무도 흡사해 진품이 짝퉁인지, 짝퉁이 진짜 명품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짝퉁이 활개를 치는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명품에 대한 열망, 명품에 대한 숭배, 이런 것들이 자리잡고 있겠지요.
 
명품 숭배와 짝퉁 양산 현상은 구두나 가방, 옷가지 등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짝퉁 교수, 짝퉁 영어강사, 짝퉁 예술가 등이 단적인 예입니다.
 
미국 명문대학의 박사학위를 위조해 유명 미술관 큐레이터, 국제 미술전 감독, 장래가 촉망되는 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한 젊은 여교수의 경우가 그렇고, 외국대학 출신임을 내세워 방송사의 유명 영어강사로 활동해온 젊은 스타강사의 사례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단속을 하는 데도 짝퉁 가방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배경에는 구치와 루이뷔통, 프라다, 버버리에 대한 숭배와 소망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짝퉁 교수, 짝퉁 강사가 나오는 데는 예일대와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MIT대 등 해외 명문대학 학위와 졸업장에 대한 무한한 숭배와 소망이 버티고 있습니다.
 
명품에 대한 소망과 갈증이 지속되는 한 짝퉁상품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처럼 해외 명문대학 학위에 대한 숭배와 목마름이 가시지 않는 한 짝퉁 교수, 짝퉁 강사는 계속 나올 것입니다.
 
일부 짝퉁상품은 진품 못지않은 품질과 디자인을 자랑하면서도 가격은 반값이 되지 않는 등 나름의 장점도 있습니다. 짝퉁 교수나 짝퉁 영어강사도 그들이 가짜 학위로 사람들을 속였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를테면 학생들을 엉터리로 가르쳤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된 영어강사의 경우 학력만 고졸이지 누구보다 성실히 가르쳤고, 실력도 괜찮았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가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짝퉁이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살아남는 이유고 경쟁력을 갖는 까닭입니다. 가짜 대학교수, 가짜 영어강사 사건이 터졌는데도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못한 채 오히려 스스로 곤혹스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짝퉁상품이 나쁜 것입니까, 아니면 구치와 루이뷔통을 숭배하는 나의 태도가 저급한 것입니까. 짝퉁 교수와 짝퉁 영어강사가 나쁜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예일대와 하버드대 학위라면 주눅부터 들고 숭배까지 하는 나의 자세가 문제입니까. 구치와 루이뷔통과 예일대와 하버드대를 숭배하는 내가 진짜 짝퉁은 아닌지 자꾸 의심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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