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쓰고 공부, 덜덜 떨며 쇼핑

황국상기자,신영범 인턴기자 2007.07.17 12:35
글자크기

서울 공공장소 실내냉방 조사결과 <2>조사장소 냉방실태

담요 쓰고 공부, 덜덜 떨며 쇼핑


서울 모 대학교 도서관의 한 열람실. 학생, 지역주민 등 이용객 30여명 중 10여명이 긴팔 옷을 입고 있다. 심지어 어떤 여성 이용객은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공부하고 있다.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신촌의 한 카페. 여자고객 두명이 온몸을 담요로 감싸고 담소를 나눈다. 이 카페는 추위를 느끼는 고객을 위해 의자 위에 담요를 한 장씩 비치해뒀다.



한겨울 같은 풍경들이다. 그러나 이날 조사팀이 실측한 서울시 중심가의 실외온도는 평균 30도(℃), 한여름이었다.

머니투데이ㆍ에너지시민연대가 12일 서울 중심가 공공장소 71곳을 공동조사한 결과, 실내 적정온도(26~28도)를 준수하고 있는 곳은 21곳(29.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장소들의 평균 실내온도도 24.6도로 에너지관리공단이 권장하는 여름철 적정 실내온도보다 낮았다. 특히, 적정온도 미만인 장소 50곳의 실내평균온도는 적정온도보다 2.3~4.3도 낮은 23.7도를 기록했다.

은행, 대형마트ㆍ백화점의 60%가 바깥문을 활짝 열어둔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다. 의류ㆍ제화점을 비롯한 상점의 40%와 패스트푸드점의 36%도 마찬가지였다.
담요 쓰고 공부, 덜덜 떨며 쇼핑
◇두 문 '활짝' 열고 에어컨은 '빵빵'=초복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2시, 무더위 속에서 서울 명동의 한 은행 지점 앞 계단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열린 은행 문으로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에어컨 냉기를 쐬었다.

명동성당 근처 한 커피숍 역시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커피숍 안에 들어가보니 손님들이 민소매 셔츠 위에 긴팔 옷을 껴입고도 연신 몸을 떨며 손바닥으로 팔을 비벼댔다.


기상청이 발표한 서울의 최고기온은 28도였다. 하지만 조사팀이 측정한 명동거리의 실외온도는 33.1도, 명동의 한 커피숍 실내온도는 21.4도였다. 무려 11.7도의 차이를 보인 것이다.

명동 한 귀퉁이 그늘에서 햇볕을 피하던 크리스 김(33)씨는 문을 열어둔 채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가동하는 상점들을 가리키며 "여름인데 이렇게 춥도록 냉방할 필요는 없을텐데 전기가 너무 아깝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한국 관광차 명동을 찾은 한 일본인 커플은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덥지만 가게 에어컨의 찬 바람은 한국이 더 세다"면서 "자동문이나 회전문이라도 달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햇볕 차단 등 노력 25.5%뿐=에어컨을 가동하면서 실내온도를 낮추기 위해 햇볕을 차단한 곳은 조사대상 중 25.5%에 그쳤다.

블라인드나 커튼, 선풍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장소(대중교통 제외) 51곳 중 13곳, 25.5%만 햇볕을 가려 실내온도를 낮췄다. 관공서 4곳, 도서관 5곳, 은행 2곳, 패스트푸드점 2곳은 차광 조치를 했다.

특히, 대형마트ㆍ백화점과 일반상점은 조사대상 15곳 중 단 한 군데도 차광 조치를 하지 않았다. 에어컨의 냉방효율을 높이기 위해 선풍기를 보조로 사용하는 경우도 51곳 중 5곳, 9.8%에 그쳤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창 내부에 블라인드나 커튼을 설치하면 실내 공간의 열 흡수량을 35% 정도 줄일 수 있다고 밝힌다. 차양을 창 외부에 달면 그 효과는 75%까지 올라간다.
↑12일 오후, 서울 명동의 일부 상점들이 2층 창문과 <br>
바깥 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 <br>
ⓒ황국상 기자↑12일 오후, 서울 명동의 일부 상점들이 2층 창문과
바깥 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
ⓒ황국상 기자
◇직원들, 긴팔 입고 근무=바깥의 무더위에도 은행, 관공서, 대형마트ㆍ백화점 실내에서 근무하는 직원 몇몇은 긴팔 옷을 입고 근무했다.

'긴팔 옷 패션'은 시내버스에서 가장 많이 보였다. 이날 조사한 시내버스 10대 중 7대에서 운전기사가 긴팔 옷을 입고 근무했다. 또 조사버스 모두가 기사석 옆 창문을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버스의 평균 실내온도는 바깥 온도보다 7도 이상 낮은 23도 정도를 기록했다. 심지어 일부 버스의 실내온도는 19도 미만이었다.

평균 실내온도가 26.3도로 적정온도를 나타냈던 도서관에서도 긴팔 패션은 발견됐다. 서울 중심가의 한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 중인 김보영(25)씨는 "에어컨 때문에 추워서 긴팔 옷을 늘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 도서관 관계자는 "비오는 날에도 에어컨을 가동하자 도서관 이용객들이 춥다고 항의한 적이 있어 요새는 선선한 날엔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공장소 실내적정온도 준수 의무화해야"= 오빛나 에너지시민연대 차장은 "현재 11개 지방자치단체의 에너지 관련 조례는 강제성 없이 공공장소의 실내 냉난방시 적정온도 준수를 '권장'하는 차원일 뿐"이라면서 "조례 개정을 통해 권장사항을 의무사항으로 바꾸는 등 규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공공장소에는 온도계와 함께 실내 적정온도를 표시함으로써 시민들이 과잉냉방 상태를 인지하고 적정냉방을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광화문ㆍ종로, 중구ㆍ명동 등 5개 중심지에서 실시된 이번 조사는 은행, 상점가, 도서관 각 10곳과 패스트푸드점 11곳, 대중교통수단(버스ㆍ지하철) 20곳, 관공서와 대형마트 및 백화점 각 5곳 등 총 71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냉방특별시'서울, 공공장소70%'겨울'
플러그 뽑고 시원하게 여름 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