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차별시정 외면…신청 全無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7.07.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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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각오 않는 한 신청 힘들고 정규직 전환여부에 더 관심

이달부터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됐던 차별시정 신청이 전무(全無)해 노동당국을 당혹케 하고 있다. 노동계 주변에서는 차별시정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벌써부터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버림받은 제도(?)=16일 중앙노동위원회와 노동부에 따르면 이날 현재까지 전국 지방노동위원회를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으니 구제해달라"는 차별시정 신청이 단 한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숨죽였던 비정규직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는 당초 전망이 어긋난 것이다. 제도시행 초기이기는 하지만 비정규직법 적용 대상이 되는 300인 이상 고용 사업장 1982개소에서 아직까지 신청이 한 건도 없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이에 따라 차별 유무를 판단할 차별시정위원회 소속 공익위원 173명을 새로 선발하고, 노동위원회 위원수를 1740명으로 확충하는 등의 준비를 해왔던 중노위는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중노위 관계자는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각 지방노동위별로 모의 차별시정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는데 호응이 너무 저조해 나름대로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0건' 왜? =노동 전문가들은 차별시정 제도의 태생적인 한계와 시기적인 문제가 결부돼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하고 있다.

차별시정 신청권이 근로자 개인에게만 부여돼 고용불안을 항상 느껴야 하는 계약직 근로자가 현실적으로 신청을 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 우선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박사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비정규직이 회사와 맞서기가 불가능하다. 보호막이 되는 노조와도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주된 관심이 차별시정 보다는 정규직 전환에 쏠려 있는 점도 차별시정 제도가 외면받는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회사 방침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도 있는 마당에 섣불리 회사와 척을 지려는 비정규직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노위의 한 간부는 "올해까지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전환 추이를 지켜보면서 차별시정 신청에 대한 선택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최근 불거진 이랜드 사태도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제도가 시행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정규직들이 제도 자체에 생소하다는 점도 차별시정 신청에 장애요소로 지적된다. 이를 근거로 중노위는 7월 봉급날인 25일이 지나면 봉급명세서를 근거로 한 차별신청인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경란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근로자 개인이 정규직과의 차별을 서류로 입증하기 어렵고, 계약해지가 이어지고 있는 마당에 누가 신청을 할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차별시정 제도는 한 회사에서 동일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복지혜택 등에서 정규직에 비해 부당한 차별을 받았을 때 신청이 가능토록 한 제도다. 사업주가 확정된 시정명령을 거부하면 1억원 미만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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