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그놈의' 법대로

머니투데이 정희경 경제부장 2007.07.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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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눈에는 곱지않은 일..기업·정치권 자의적 사용 '문제'

[광화문] '그놈의' 법대로


'법대로'는 우리 사회에서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말 중 하나다. 사회적 혼란을 해결하고 조화와 복지를 도모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법을 따르자는 것인데도 종종 정략적이거나 비아냥조로 활용된다. 그동안 법이 원칙없이 자의적으로 적용된 사례가 많았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힘없는 서민들의 눈에는 '법대로'가 곱지 않다. 자신을 법 앞에 약자로 보는 이들은 "재벌이나 정치인이 언제 일반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느냐"고 반문하면서 "법대로 하면 손해"라는 인식을 다진다.



반면 법에 상대적으로 당당한 이들이 앞세우는 '법대로'는 인정사정 없이 다퉈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이 어려우니 법의 판단을 구해보자"는 겸손한 태도가 아니라 "법의 힘을 빌려 상대방을 제압하겠다"는 오만한 의욕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식차로 인해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법대로'는 혼란의 중심이 된다. 최근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사태가 일례다. 이랜드가 뉴코아 계약직 계산업무의 외주화를 집단해고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촉발된 사태는 갓 시행된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차별시정 위반을 '법대로'로 피하겠다는 경영진과 비정규직을 결국 '법대로' 대량 해고하는 것이어서 매장 점거 등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노조원들이 맞서면서 비정규직법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회사 측의 결정은 불법적이지는 않지만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고, 노조의 대응은 적법하지 않되 법의 취지를 얻겠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이 갈등 역시 '법대로' 해결될 전망이다. "기업은 비용부담을 최소화하고 근로자는 고용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서로 반발짝씩 양보해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지만 '법대로'에 밀리고 있다.

'법대로'를 둘러싼 공방은 법을 만드는 정치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간 고소·고발사건은 여의도판 '법대로' 다툼이다.


이 후보 진영은 11일 박 후보 캠프를 고소한 김재정씨에게 고소 취하를 권유하기로 결정했다. "집안싸움이 법정으로 가서는 안된다. 법도 집안 문턱으로 들어와서는 안된다"(이 후보 측의 박희태 경선대책위원장)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김씨가 고소를 끝내 취하하지 않거나 아예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면 사건은 결국 '여의도'가 아닌 '서초동'에서 정리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한 청와대와 선거관리위원회의 신경전도 외형은 '법대로' 분쟁이다.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 우려가 있는지 사전에 선관위에 질의한 것은 앞으로 '법대로' 말하겠다는 얘기다.



'법대로'가 계속 분출되면 법치주의를 굳건히 하기는커녕 법 앞에 '그놈의'라는 수식어만 덧붙일 뿐이다. "법대로, 또는 법의 이름으로라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사건 속에 깊이 숨겨진 원인을 찾아내 치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판사 석궁 테러 사건과 관련해 올해 초 한 부장검사가 던진 이 말은 법조계에만 국한된 충고는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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