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式 '차별시정' 해법 논란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7.07.08 13:34
글자크기

차별시정제 본격화되면 갈등 더 커질 듯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노·사 갈등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과의 전면전으로 비화된 이랜드 사태가 비정규직 갈등의 최전선이다. 다른 중소규모 사업장에서도 유사한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사측이 '차별시정'을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집단해고 하거나 업무 자체를 정규직과 분리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비정규직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차별시정 신청이 본격적으로 접수되는 이달말부터 보다 광범위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차별시정'이 무서워=이랜드 그룹은 7월 비정규직법 시행에 앞서 홈에버의 계약직 계산원 1100여명 중 600여명을 분리 직군제 형식의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또 뉴코아 비정규직 계산원 223명에 대해서는 외주화 방침을 정하고 사실상 해고 조치를 취했다.

모든게 비정규직법 시행과 더불어 도입된 '차별시정' 제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이나 복지혜택 등에서 비정상적 차별을 두면 노동위 조사를 거쳐 강제적으로 시정을 할 수 있도록 한게 '차별시정'의 핵심 내용이다.



계산원 업무 특성상 차별시정의 직접적 대상이 될게 분명한 상황에서 이랜드 그룹이 나름대로 '긴급 처방'을 한 것이지만 매장점거 등 노동계의 극한 반발을 불러왔다.

민주노총은 8일 이랜드 그룹 산하 전국 21개 매장에 대한 점거투쟁을 전개하면서 해고 철회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이랜드가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사실상 이랜드 식 '차별시정' 해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랜드측은 "기업 사정에 맞춰 법적으로 허용된 외주화를 택한 것인데도 악덕기업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이랜드 사측은 점거농성을 주도한 노조 집행부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면서 '선 농성해제, 후 교섭'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민주노총을 등에 업은 노조측은 '선 성실교섭, 후 농성해제'를 주장해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다.

이랜드 사태가 집중 부각되고 있지만 중소기업 사업장에서도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로선경오피스텔에서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용역전환에 반발하며 농성을 벌이던 중 이날 새벽 사측의 용역직원 투입으로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졌다. 이밖에 송파구청, 광주시청, 서울대병원 등에서도 기존 비정규직의 계약해지나 용역 전환을 둘러싼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외주화 갈등 커질 듯=그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비정규직을 사용해왔던 기업들에게 '차별시정' 제도는 엄청난 부담이다. 차별이 인정되면 보상을 해줘야 할 뿐 아니라 확정된 시정명령을 거부 할 경우에는 최대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상되는 분란을 사전차단키 위해 우리은행·부산은행·신세계·삼성테스코 등 비정규직을 다수 고용한 금융·유통업종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 사례가 잇따랐다.
대부분은 계산원과 은행창구직 업무를 별도 직군으로 전환시킨뒤 기존 정규직과는 별도의 임금·복지 체계를 적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경우 10~20% 가량의 임금상승 효과가 발생해 해당 비정규직들의 반감이 적었다.

그러나 이랜드 처럼 외주화를 선택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외주화 과정에서 기존 비정규직의 집단해고가 발생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노사갈등을 불러온다는 점에서다.
노동부에서도 비정규직 시행에 따른 최대 부작용으로 기업들의 외주화를 예상하면서 행정지도를 강화하고 있지만 개별기업의 경영선택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에 따라 향후 차별시정 신청이 늘게 되면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대신 외주화 등 간접고용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기업들이 중소업종을 중심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 통계에서도 이런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비정규직이 34만명 증가한 가운데 계약직은 오히려 2만명이 감소했다. 반면 장기임시근로자(33만명), 호출근로자(25만명) 등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돼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외주화가 편할 것 같지만 이랜드 사례처럼 노사 갈등에 따른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외주화 억제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