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들이고 재밌게 노는 법에 대해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7.07.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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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사소한 즐거움에 눈떠보자

얼마전 금요일, 퇴근 후에 수원에 사는 처형댁에 아내와 함께 놀러갔다. 처형네는 최근 그 동네로 이사를 가서 어차피 가봐야 했었는데, 손윗 동서께서 일주일간 해외출장을 간 사이에 적적했던(?) 처형이 동생을 호출했던 것.

처형에겐 아들이 둘 있다. 큰 아들 서준이는 5살, 둘째 준한이가 3살이다. 이 또래 사내 아이들이 다 그렇듯, 두 조카 녀석은 정말 시끄럽다. 거실로 주방으로, 작은 방이며 큰 방을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닌다. 예전 어느 광고에 '아이들 운동량은 레슬링 선수 심권호도 못 당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왼쪽이 첫째 서준이, 오른쪽이 둘째 준한이다. 2살 터울이라 두 녀석은 자주 싸운다. 준한이는 제 형에게 웬만해선 잘 지지 않는다.왼쪽이 첫째 서준이, 오른쪽이 둘째 준한이다. 2살 터울이라 두 녀석은 자주 싸운다. 준한이는 제 형에게 웬만해선 잘 지지 않는다.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조금이나마 보답할 겸 해서, 처형이 숨을 좀 돌릴 수 있도록 아이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밤이라 멀리는 못 갔다. 그냥 아파트 단지 이곳 저곳을 다녔다. 신도시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인지라, 조명도 밝았고 놀이터 같은 시설이 꽤 잘 돼 있었다.



아이들과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탔다. 아이들을 들어 빙빙 돌리며 '팔 그네'도 태워줬다. 아이들은 '꺅꺅' 비명소리를 질렀다. 정말 신난 모습이었다.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을 뿐이고, 맨날 보는 놀이터에서 놀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걸까.

결국 이튿날인 토요일 오후 늦게까지 처형댁에서 뒹글거리며 지내게 됐다. (일요일엔 신문이 나오지 않으므로 기자들은 보통 토요일에 쉰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동네 산책을 나왔다. 서준이가 타는 퀵보드와 세발자전거도 가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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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준한이 녀석에게 세발 자전거를 가르쳐 주려고 했다. 하지만 준한이는 세발 자전거를 타기엔 아직 다리가 약간 짧았다.

덕분에 준한이 녀석은 제 형 서준이가 모는 세발자전거 뒷 자리에 앉아 건방진(?) 자세로 동네 유람을 즐겼다.

서준이는 아직 5살밖에 안 된 주제에 그래도 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동생을 태우고선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자신의 자전거 실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아파트 단지 이곳 저곳을 종횡무진 누볐다. 한 30여분쯤 뒤 다리가 아프다고 찡얼거리며 결국 5살짜리의 본색을 드러내긴 했지만.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시설에서 놀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알록달록한 우레탄 바닥 여기저기에 네모난 블록이 그어져 있었다.



서준이에게 자전거를 몰아서 블록 안으로 주차(?)를 시켜보라고 했다. 이 녀석은 블록 가까이로 오더니, 뒤로 휙 돌아서 천천히 후진해 정확히 금 안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제 아빠가 주차하는 걸 본 모양이다. 한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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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범선 모양을 한 놀이 시설에서 미끄럼틀도 타고, 철봉에 매달리기도 했다. 서준이는 제 키로는 잘 안 닿은 철봉을 뛰어서 잡으려다 손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내 울음보를 터뜨렸다.

안아주고 엉덩이에 '호∼'를 해주었다. 주문도 외워주었다. '얄랴뿡뿡 낄낄뿡뿡 안 아프다 뿡뿡 띠잉∼'. 이내 서준이 얼굴엔 '히∼'하고 웃음이 돌아왔다. 녀석, 엉덩이에 털 났겠다.



들어와 수박 먹고 계속 집안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았다. 숨바꼭질도 하고 어설프게 구연동화 흉내를 내며 그림 동화책도 읽어줬다.

처형은 내게 "쉬는 날인데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피곤하겠다"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나도 아이들만큼이나 정말 즐거웠다. 별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순전히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들에겐 별 것 아닌 걸로도 정말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신통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하는 얘기는 어쩌면 정말 뻔한 '어른들의 거짓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아주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겠다. 내 경험으로도 항상 용돈이 모자랐던 고교시절이나 대학시절에 훨씬 더 잘 놀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때 기억이 떠오른다.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졸까봐, 과도한 운동을 못하게 하셨다. 그래도 우리들은 선생님 눈치를 봐가며, 교실 문틀을 네트 삼아 우유팩을 찌그러뜨려 만든 공으로 배구를 했다.

큰 공으로 넓은 운동장 한 가운데서 축구를 하는 것 역시 금지됐다. 대안은 테니스공이었다. 운동장 스탠드 아래에서 교무실 선생님들의 시야를 피해 다 큰 녀석들이 테니스공 하나를 졸졸 쫓아 다녔다. 그나마 이것도 못하게 하면 연습장 노트에 칸을 그려 마주보고 앉아, 동전을 볼펜으로 쳐가며 정해진 칸에 집어넣는 '축구 놀이'를 했다.

대학 시절,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캠퍼스 나무그늘 아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대부분 청바지 차림이라 아무렇게나 털썩 앉았다. 기타 한 대와 노래책 한 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자판기 커피 한잔에 크래커 한쪽으로도 좋았다.



어느덧 사회생활을 한지도 이제 햇수로 14년째다. 바쁜 일상에 지쳐가면서 '즐겁다'라는 느낌에 대해서도 점점 무뎌지게 됐다.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이 둔해지다보니, '좀 놀았다'라는 소리를 할 수 있으려면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들게 됐다. 그러면서도 즐거운 기분은 예전만 못하다. 경제적으로도, 행복이라는 면에서도 정말 손해다.

서준이와 준한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어린 두 조카녀석은 어른인 내게 사소한 즐거움에 대해 다시 눈뜨게 해주었다. 일요일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각각 바둑알 3개를 갖고 '알까기' 시합을 했다. 한판에 천원씩 내기도 했다. 결과는 나의 완패. 아내는 내 눈앞에서 딴 3천원을 전리품처럼 흔들어대며 약을 올렸다. 난 다음날 저녁 '처절한 피의 복수'(?)를 다짐하며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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