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투자 제대로 보기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2007.06.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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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의 좋은투자]주주 주장과 관여전략의 차이와 유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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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한 시민단체에서는 97년부터 소액주주운동을 벌여왔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소액주주 권익보호’와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였다. 그들은 소량의 주식을 매입하여 주주총회에 출석한 후 총회장에서 맹활약했다. 때때로 발언권을 얻어 사측과의 몸싸움도 불사하며 회사의 부적절한 내용들을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주엔 국내 가톨릭계가 주주행동에 나섰다. 한 센터를 중심으로 삼성화재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지속가능보고서 발간을 요구하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했다. 이 제안에는 5개의 수도회와 3개의 수녀회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총 보유한 주식 수는 144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2400만 원 정도의 규모다. 이는 그 회사 전체 시가총액에서 약 0.00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사회책임투자자들도 투자한 기업들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행동을 취한다. 이것도 그들의 전략 중 하나다. 즉 경영진에 편지 보내기, 그들과의 미팅을 통한 대화, 주총에서의 투표권 행사, 주주제안서의 제출, 임시주총의 소집 요구 등 다양한 방법들이 망라된다.

이들을 통칭하여 사회책임투자의 관여전략(Engagement Strategy)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위의 시민단체나 종교기관 등이 중심이 된 주주 주장(Shareholder Advocacy)과 사회책임투자의 관여전략과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차이점과 유사점이 있을까.



첫째, 목적부터 다르다. 우선 시민단체나 종교단체 등은 정의나 평등과 같은 가치구현이 목적이지만 사회책임투자자들은 투자수익의 극대화가 최우선적 목적이다. 다만 시민단체의 주주 주장이나 사회책임투자의 관여 공히 주주권을 사용하여 각자의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시민단체 등은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가치의 유지에는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보유주식도 극히 소량이다. 이들은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주식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비자 불매운동도 불사한다.

이에 비해 사회책임투자 기관들은 주식가치에 변동을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은 극도로 자제한다. 대개의 경우 대량 주식보유자들인 이들은 회사와 한 배를 타고 있고, 쉽게 그 배에서 내릴 수 없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둘째, 시민단체 등이 단일 안건에 집중하는 대신 후자의 사회책임투자가들은 여러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예를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시민단체가 노조설립 그 자체를 가치화하는 경향을 띤다면 투자가들은 노조의 존재 유무에 집착하기 보다는 회사의 전반적인 노사관계 및 대종업원정책이 기업의 장기적 가치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진다. 즉 명분이나 규범보다는 실용과 실리의 입장에 선다.

사회책임투자가들은 특정기업이 노조 설립을 불허한다 하더라도 종업원의 권익과 복지정책에서 돌출된 문제가 없고 기업의 실적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면 그러한 기업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투자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최종적 목적에 우호적인 결과를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시민단체 등이 기업의 문제를 공론화시키려는 경향을 띤다면 사회책임투자자들은 언론매체를 통해 기업의 문제가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보다는 비공개적이며 조용한 대화, 우호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자 노력한다.

물론 회사 측과 의견 절충에서 평행선을 달린다면 언론, 시민단체 등과 공조하면서 회사를 압박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카드에 불과하다. 이 역시도 회사에게 악재는 그들에게도 곧 악재라는 실리적 판단에 근거한다.

사회책임투자는 다양한 투자방법들 중 하나일 뿐이다. 흔히 주식시장에서 회자되는 가치투자, 포트폴리오투자, 차트분석에 의한 투자 등과 같이 또 다른 형태의 대안적 투자방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른 투자법처럼 사회책임투자도 수익률의 극대화를 놓고 최우선적으로 노심초사한다. 다만 ‘사회책임’이라는 수식어를 붙드는 이유는 그것이 기업의 장기가치에 매우 밀접한 기회 및 위험이 요인이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따라서 사회책임투자의 여러 가지 접근법들 역시 다분히 전략적일 수밖에 없다. 그 중 관여전략도 마찬가지다. 관여전략을 이행함으로 인해 예상되는 대가와 지불해야 하는 비용 사이에서 유리한 손익계산서가 나올 때 그들은 비로소 행동한다. 이것이 시민운동가들의 주주 주장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우리나라의 주주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는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주총회장을 들썩이고 세간의 이목을 끄는 주주 주장이 곧 사회책임투자와 동일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양자 간 공통의 영역도 존재하지만 이질적 요소들도 많다. 이러한 측면을 제대로 판별하여 사회책임투자를 ‘시민운동의 영역’에서 ‘투자의 본령’으로 인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일은 바로 투자업계 그들의 권리이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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