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일보다 더 소중한 것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7.05.2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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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성공학]35번째글..영화 '내일의 기억'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사랑은 참 여러가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그 얼굴의 한 단면이라도 제대로 본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사랑은 참 이상합니다. 사랑만으론 밥도 먹지 못하고, 옷도 입지 못하고, 잠 잘 곳도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이렇듯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갖고 있는 사랑의 의미는 있을 겁니다.

저요? 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소중한 추억을 함께 나눠 가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 추억이란 그저 단순하게 좋은 기억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추억은 내 몸과 내 몸속에 담긴 영혼 외에, 또 다른 나 자신입니다. 내 몸이 없어져도, 내 영혼이 흩어져도,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추억속에서 또 하나의 나를 떠올리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사람과의 따뜻한 추억은 신비한 사랑의 힘 덕분에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록 그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말입니다.

누군가 남자는 망각으로 살아가고, 여자는 추억으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조금 더 단순할 뿐입니다. 단순해서 모두 다 담을 수 없다 보니, 정작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돈 버는 일보다 더 소중한 것


그러다보니 남자에게 추억은 잘 보이지 않는 가슴속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있습니다. 영화 '내일의 기억' 속 주인공인 남편 사에키 마사유키(배우 와타나베 켄)처럼 말이죠.


마사유키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기까지는 여느 일본 남자들과 비슷한 인생을 삽니다.(한국 남자들도 별로 다르진 않을 겁니다)

오직 일에만 파묻힌 채, 가정의 모든 일은 아내 에미코에게 다 맡겨 버립니다. 그러는 사이, 가족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소중한 추억들은 일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쓸려 가버립니다.

오히려 알츠하이머에 걸려 회사를 관둔 이후,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의 추억을 소복하게 쌓아 갈 수 있게 됩니다. 남편은 남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됐다며 괴로워하지만, 정작 아내는 그런 것에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사소한 일상의 하나하나를 남편과 함께 합니다.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남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여자는 상대가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는 루소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속에서, 사랑으로 만들어내는 추억속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위대한 것 같습니다.

남편은 점차 기억을 잃어갑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던 순간의 기억만큼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가슴 벅차던 그녀와의 추억을 결코 흩어진 기억속으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남편은 그녀의 이름이 적힌 미완성의 찻잔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의 사랑의 흔적이 고즈넉히 묻혀 있는 옛 도예공방으로 갑니다.

남편을 보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시간이 모자라 사랑의 추억을 겨우 찻 잔 하나에만 담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남편처럼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족은 그보다도 더 소중합니다. 더 소중한 것을 뒤로 미뤄선 안 됩니다. 가족과 추억을 만들어가는 일은 그 어느 것보다 맨 앞에 있어야 합니다.

추억은 식물과도 같습니다. 싱싱할 때 심어 두지 않으면 뿌리를 박지 못합니다. 싱싱한 젊음 속에서 싱싱한 추억을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을 때, 추억이 우리 인생이 천천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훗날 삶을 마감할 때, 추억 대신 후회가 가슴속에 멍울지지 않게 하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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