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의 노블레스오블리주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 교수 2007.05.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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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칼럼]가난한 할머니들의 기부와 재벌총수의 폭력

할머니들의 노블레스오블리주


서울 영등포에 사는 송부금 할머니(69)는 최근 자신이 평생 저축해서 모은 돈 23억 원을 한국복지재단과 독거노인 등 빈곤층 주민들을 돕는 연탄은행에 선뜻 기부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수원의 한 양로원에 살고 있는 김갑순 할머니(85)는 "돈이 없어서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불우한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평생 고생해서 모은 돈 5천만 원을 KBS강태원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전북 남원에 사는 박순금(92) 할머니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년 9만원씩 지급되는 노령 교통수당을 5년 동안 모은 50만원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가기 부끄럽다”며 한일장신대학교에 발전기금으로 기증하여 보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

전남 광주의 이순례 할머니(84)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다며 10억원 상당의 땅을 전남대학교에 기부했다. 할머니의 기증서전달식에는 재산을 뜻있게 사용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기부 결정에 기쁜 마음으로 동의한 아들딸들이 함께하여 감동을 자아내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매월 48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25만원은 월세로 내고 23만원으로 어렵게 생활을 꾸려온 서울의 김화규 할머니(72)는 자신의 전 재산인 전세보증금 400만원과 100만원이 든 통장을 유산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김 할머니는 "나처럼 혼자 사는 노인들이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가 기부한 유산 중 저금 100만원은 사실 할머니를 10년 넘게 돌봐온 동대문구청의 이춘자 주민생활지원과 복지서비스연계팀장의 돈이라고 한다. 꼭 500만원을 채워서 기부하고 싶어 했던 김 할머니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이라도 팔아서 돈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이춘자 팀장이 사재 100만원을 보탰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 나라의 기부는 할머니들이 다하시는구나 싶어 낯이 뜨거워지고 세상에 나눌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구나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미담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이 일련의 기부들이 모 재벌총수가 경호원과 조폭을 동원하여 폭력을 휘두른 사건으로 온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무렵 이루어진 일이라 그 감동은 더욱 컸다.


극단적으로 대비가 되는 두 가지 보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를 새삼스레 되새기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현대적 의미는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라 할 수 있다.

과연 우리의 지도층의 염두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가 있기는 한 걸까. 재벌회장의 폭력사건에 대해 재계를 대표하는 어떤 이는 "아들이 맞고 와서 아버지가 때린 정도의 사건“이라며 ”대기업 오너니까 더 도덕적이 돼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에 대해 별 책임질 일이 없는 할머니들도 이렇게 선행을 하는 마당에 백번 양보해도 사회지도층임에 틀림없는 재벌총수가 도덕적 책임은 고사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이럴 때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유일한 선생이다. 선생은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투사였으며 해방 후의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결코 정경유착을 하지 않았고 납세의 의무를 철저하게 지킨 참기업인이었다.

그는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라며 자신이 일군 기업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났다. 기업은 그에게 목적이 아니라 나눔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가치 판단기준은 국가, 교육, 기업, 가정의 순서라고 강조하고 실천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지도층인사들이 유일한 선생을 본받을 수는 없겠지만 할머니들의 모범만큼이라도 본받기를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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