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네트웍스 살린 김승유회장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2007.04.2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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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31일 '채권단 회의' 되돌아보면…

SK네트웍스 살린 김승유회장


2003년 7월31일 명동 은행연합회 2층 국제회의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국내 65개, 해외 29개 등으로 구성된 SK네트웍스의 94개 전체 채권단 회의가 열린 곳이다. 워크아웃 여부가 판가름나는 자리였기에 채권금융기관 관계자들과 각 언론사 기자들까지 합쳐 200명이 넘는 인원이 회의장을 메웠다.

해외금융기관 관계자들이 부담을 느꼈는지 기자들의 철수를 요구했다. 그러자 김승유 당시 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왜 내보냅니까. 언론도 현장을 지켜봐야 합니다"며 저지하고 나섰다.



그는 참석한 취재기자들과 방송카메라 앞에서 "국·내외 채권단 모두 동일하게 43% 수준의 캐시바이아웃(CBO: Cash Buy Out)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크아웃에 동의하기 싫으면 모든 채권자가 공평하게 100억원의 채권액 중 43억원만 받고 나머지 57억원은 포기한채 빠져나가는 스킴이다.

당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적용을 받지않은 29개 해외채권금융기관은 협상을 거부하고 보유채권의 전액상환을 요구, 워크아웃에 급제동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IMF사태 이후 당시까지 해외채권단은 새한 등 워크아웃 진행기업에 대해 보유채권을 전액 상환해 빠져나갔고, 결국 워크아웃은 국내채권단만으로 진행됐었다.



김 행장은 해외채권단에 대한 압박강도를 더 높여갔다.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SK네트웍스에 대해 사전정리계획안(Pre-Package)에 의한 회사정리절차를 신청하겠다"는 최종협상안을 내놓았다. 법정관리로 갈 경우 채권회수율은 약 22% 정도에 불과해 채권단공동관리 때의 절반정도로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한다는 으름장이었던 셈. 김행장의 압박강도가 심상치않음을 느낀 해외채권단도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당시 그것은 배수의 진을 친 결정이었다"며 "이것이 SK네트웍스를 살리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김 행장은 주채권은행장으로서 위기 초기단계부터채권금융기관장과의 수차례 회동을 주선하고 금융감독당국과 긴밀한 협조 아래 사태를 조기에 수습토록 합의를 이끌어냈다. 김 행장은 이때 사람 만나느라 정신없었다고 회고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끝에 결의된 워크아웃 이후 SK네트웍스는 채권단의 후원하에 급속히 정상화의 길을 걸어갔다. SK그룹도 SK가 보유하고 있는 상거래 채권 8500억원의 출자전환을 단행했다.지분매각, 사업구조조정 등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에 약속된 자구계획을 성실히 이행했다. 그결과 2003년 워크아웃 당시 1921억원에 불과하던 영업이익이 2004년 3537억원, 2006는 3882억원까지 늘었다.

3년반만에 19일 SK네트웍스는 졸업했다. 채권단과 회사의 공동노력에 의한 성공사례이이자 워크아웃 역사상 국내외 채권단이 동등한 대우속에 순수한 시장논리 원칙에 입각해 상업적 판단으로 처리한 최초의 사례라는 분석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김행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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