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증권사 지급결제 난센스

머니투데이 강호병 금융부장 2007.04.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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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성과 효율성은 언제나 상충된다. 안전하게 하려면 갖가지 보안·보호장치가 있어야 하고 그만큼 돈도 들고 불편해진다. 편하자면 그런 거추장스런 것이 없어야 하지만 대신 한방에 무너지는 수가 있다. 특히 금융은 고성능이 될수록 불안이 심해지는 특이한 곳이다. 그래서 금융에 변화를 줄 때는 하지말 것과 시간을 두고 해야할 것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관련해 증권위탁계좌에도 은행이 담당하는 공공성 강한 기간기능인 지급결제기능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황당하다. 주식투자자나 증권사에 대단한 이익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위험만 큰데 한국판 골드만삭스 육성이라는 원대한 꿈을 가진 자통법 제정에 이 메뉴가 왜 필요한지 이해를 못하겠다.



 세계 굴지의 투자회사는 투자은행(IB)업무로 돈을 벌지, 지급결제기능을 갖고 있어서 돈을 잘 벌고 있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결제기능을 위한 투자를 하는데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지급결제투자는 공공성 있는 투자다. 따라서 안전한 지급결제를 위한 투자는 공공성이 더 강한 은행에 맡기고 증권회사는 그러한 돈이 있으면 IB 등 돈되는 비즈니스에 잘 투자할 일이다. 그러한 투자유인 및 행동유인이 없는 곳에 공공기능을 맡기는 것부터 우습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어 국제적으로 망신감이다. 미국은 증권사에 지급결제업무를 일절 허용하지 않고 있고 캐나다는 참여를 허용했지만 막대한 비용부담 때문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10조원 정도 되는 고객예탁금은 고객이 주식투자를 위해 맡겨놓은 돈, 그러니까 투기성 대기자금이다. 처음부터 지급결제용으로 맡겨놓은 은행 보통예금과 결이 다르다. 보통예금은 결제자금이기에 은행은 염가로 결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자도 별로 안준다.

 그런 고객예탁금을 은행 보통예금 이용하듯 인터넷·ATM·전화·휴대폰 등을 이용해 입출금, 송금을 하고 신용카드까지 결제하자는 것이 증권사 지급결제 허용 구상이다. 주식투자자 입장에서 가상계좌를 통해야 하는 지금보다 다소 편해지는 것은 있다. 그러나 대신 이용수수료 부담이 많이 파생돼 전체적으론 덕보는 것도 없다. 증권사가 은행의 기업고객이 아닌 은행과 같은 반열의 결제주체가 되면 증권사에서 은행으로 돈을 부치는 것이 타행이체가 돼 지금보다 많은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손님과 증권사간 거래 이면에 금융기관간 청산·결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면 더 끔찍하다. 결제기관으로선 손님이 지시한 거래이행은 일종의 신용거래다. 오늘 이 손님, 저 손님이 요청한 것을 장부상으로만 이체기록을 해놓고 실제 돈은 다음날 모여 한꺼번에 정산하는 식이다. 이런데 증권투자와 얽혀 얼마든지 레버리지가 가능한 고객예탁금에 대해 처음부터 결제에 투철할 수 없는 증권사가 지급결제망에 들어왔을 때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금융에 밝은 선진국이 바보라서 증권사에 지급결제기능을 안주겠는가. 아주 사소한 확률의 위험도 거부할 만큼 안전성이 생명인 금융의 최하부 인프라이기에 그렇다. 함부로 겸업논리를 갖다붙이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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