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자 남기고 떠나는 황영기 행장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2007.03.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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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실적에도 연임, 보상 없이 26일 퇴임..'황영기 브랜드' 각인

"내가 최대주주였다면 100억원을 줘서라도 한번 더 붙잡았을 겁니다. 저 뿐 아니라 본부 부장들끼리 만나면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이달 초 만난 우리은행의 한 본부부서 부장은 이렇게 아쉬움을 표현했다. 떠나는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에 대한 얘기다.



금융권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황 행장이 26일 오전 11시 이임식을 갖고 물러난다. 오는 30일 우리금융 회장직을 물려주면 우리금융그룹 CEO로서의 3년을 모두 뒤로 하게 된다.

황 행장은 탁월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다른 은행장들처럼 수십억, 수백억원 가치의 스톡옵션도 받지 못했다. 연임하는 은행장들이 크게 늘어났지만 그 축에도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3년이 헛된 것은 아니다. 'CEO 황영기'라는 이름 석자는 확실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퇴장이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름 석자 남기고 떠나는 황영기 행장


◆3년만에 외환은행 만큼 자산을 늘리다

황 행장의 실적 가운데 외형상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자산 성장이다. 취임 직전인 2003년 말 119조원이던 우리은행의 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18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3년만에 외환은행의 자산 규모에 맞먹는 67조5000억원의 자산을 늘린 것이다. 우리은행은 이같은 자산 성장세를 바탕으로 구 조흥은행과 합병한 신한은행을 제치고 은행권 2위 자리를 재탈환했다. 우리금융그룹 전체 총자산도 2003년말 129조원에서 지난해 말 212조원으로 급증했다. 우리금융의 순익도 2004년 1조2925억원, 2005년 1조6882억원에 이어 지난해 2조164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은 연거푸 경신했다.

자산 건전성도 안정적이다. 우리은행의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2003년 말 2.3%에서 지난해 말에는 0.96%까지 하락했다.


이같은 실적은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우리금융 주가는 황 행장 취임 무렵인 2003년 3월30일 8850원에서 지난 23일 현재 2만3800원을 기록했다. 시가총액도 6조8630억원에서 19조1831억원으로 급증했다. 주가는 169%, 시가총액은 180% 각각 증가한 것이다.

◆1등 정신의 부활 그리고 MOU, 비정규직 전환



재무성과 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대목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은 일이다.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으로 주눅들어 있던 우리금융 및 우리은행 직원들에게 다시 '1등 정신'을 일깨웠다는 것.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는데는 황 행장 특유의 언변도 큰 힘이 됐다. '솔개 정신' '장산곶매' '몽골 기마병' 등 그가 남긴 어록만 해도 적지 않다. 정부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맺은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 개폐정 작업도 황 행장이 어떤 일보다 정성을 들였던 일이다. 정부는 곧 MOU 개정안을 발표할 예정으로 있다.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도 그가 아니었다면 결단을 내리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일부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법안의 시행으로 '발등의 불'이 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최근 우리은행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 대한 기업, 학계, 정부 측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검투사적 기질의 '明' '暗'



황 행장의 물러서지 않는 '검투사'적 기질은 뛰어난 경영 성과를 만들어냈지만 연임 전선에는 되레 결정적인 걸림돌이 됐다. 대주주인 예보와의 잦은 마찰은 '대정부 관계를 잘 할 수 있는 CEO'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황 행장은 예상을 깨고 우리금융 회장 후보 3인에도 들지 못하고 탈락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이같은 황 행장의 기질에 대해 혹평을 하는 이들도 있다. '조직' 보다 '개인 브랜드'를 위해 자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반된 해석도 있다. 대주주인 정부와 맞서기까지 했던 황 행장의 모습은 '우리은행은 너무나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황 행장이 우리은행을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실속을 챙기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 행장은 이달 초 가졌던 마지막 월례조회에서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서문을 인용, 애틋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저는 우리은행을 님으로 생각하고 살아왔고 제가 우리은행을 사랑하고 우리은행의 임직원들이 저를 사랑해주시는 관계 속에서 지난 3년이 있었습니다"

3년간 정든 님을 떠나는 황 행장. 그가 써내려갈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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