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 의원의 순환출자 반대 이유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7.03.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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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색인터뷰]현대車 순환출자 만든 주인공 "주식회사 본질…"

이계안 의원의 순환출자 반대 이유


'선입견'은 무섭다. 섣부른 '예단'에 얽매여 정작 봐야할 것을 놓치기 일쑤다. "렉서스를 꿈꾸며…"라는 말을 남기고 집권 여당을 떠난 이계안 의원.

그와의 만남은 '예단'과 '선입견'을 깨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순간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하셨던 말까지 떠올랐다. "대충 아는 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



그는 대기업 CEO 출신이다.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캐피탈 회장 등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1976년 현대중공업 입사 이후 30년 가까이 '현대맨'으로 보낸 의리파다. 다른 편에서는 '재벌'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비쳐지기 충분하다.

이 대목에서 선입견을 안 가질 수 없다. '그가 꿈꾼 렉서스가 소위 친시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겠지'. 주위 사람들도 이런 생각에 동조했으니 나는 '섣부르다'는 생각조차 갖지 못했다.



이 의원이 출총제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 순환출자금지까지 주장하고 나선 데 대해 더 놀라움이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궁금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출총제부터 물었다. 물론 그 역시 준비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으면 의아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곤 쉼없이 쏟아낸다.

그의 생각이 바뀐 시점은 외환위기 전후라고 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에 대한 믿음이 깨진 때다.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예로 들었다.

해전에서 맥을 못 추던 조조의 군사들이 조그만 배들을 묶으면서 수공(水攻)에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제갈량의 화공(火攻)에는 무력하게 망해버린 얘기였다.


"경제개발 초기 외국에 나가면 피라미처럼 보이니까 가공자산이라도 만들어 싸울 만한 놈으로 보인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느 시점 모순이 극에 달하니 죽어버린 것이죠.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선뜻 이해가 안 간다. 순환출자의 대표적인 예가 현대차. '현대차 (281,000원 ▲3,500 +1.26%)→현대캐피탈→현대제철 (28,850원 ▼250 -0.86%)→현대차'로 이어지는 환상형 순환출자를 기획하고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이 의원이다.

이어지는 그의 양심고백 하나. "현대차 하나만 갖고 출자한도가 나오지 않아서 현대캐피탈을 끼워 돌렸죠. 그때 금융회사가 다른 회사 10% 이상 의결권을 가질 수 없는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법위반에 따른 제재가 없더군요. 그래서 했습니다"

그가 설명 논거로 '주식회사' 문제를 꺼낸다. 뜬금없다 여겨질 쯤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식회사의 본질은 유한책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한책임제도 주식회사에 대해 심각한 도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삼성자동차와 이건희 회장의 사재 출연, LG카드 (0원 %) 정리 과정 등을 되새긴다. 생명보험사 상장과 관련된 공헌기금도 주식회사 본질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한다.

많이 듣던 재벌의 논리다. 뭘까. "원칙이 중요합니다. 주식회사의 원칙은 유한 책임이고 상법에 보면 자본 충실의 원칙도 있습니다. 상호출자, 순환 출자도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원칙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규제를 당연합니다" 재벌 스스로 회사의 무한정 자유를 외치며 '유한책임'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는 데 대한 경고다.

그는 순환출자의 고수다. 출총제 문제 등을 놓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지독하게 싸웠던 선봉장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제 친정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환상형은 물론 비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마련 중이다.

"재벌에 근무하는 이들이 제 후배죠. 이들의 설명이 다른 의원들한테는 그럴 듯 하게 들리겠지만…." 처음 가졌던 선입견은 사라졌다.

"공정한 시장 경제로 가기 위해 왜곡되지 않는 주식회사의 본질이 무엇인가, 헌법에 담긴 공정 경쟁을 무엇인가를 음미해야 합니다. 언론들도 전경련 등의 논리에 많이 경도돼 있죠." 출총제 폐지를 위해 뛰는 대기업 관계자들은 쉽지 않은 '적'을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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