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표 전구의 변신 '인류를 이롭게'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07.03.2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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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중기] 금호전기 '백열전구에서 첨단 IT조명까지'

번개표 백열전구는 1963년부터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조명의 명가로 불리는 금호전기는 당시 이 백열전구로 KS마크 1호를 취득했다. 밝은 세상을 만드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는 이 때 만들어졌다.

조명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한 금호전기 (710원 0.00%)는 최근 일반 조명은 물론 첨단 정보기술(IT) 디스플레이 조명도 만들고 있다. 2005년 세계 최초로 2000mm 냉음극 형광램프(CCFL)를 개발한 기술력을 가졌다. 일본이 독점하려던 기술을 국산화해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한 주역이다.



◇백열전구의 위기

금호전기의 창립은 백열전구의 역사보다 훨씬 이른 1935년에 이뤄졌다. 서울 용산구에 청엽제작소라는 회사명으로 설립돼 수도미터를 만들기 시작했던 중소기업이 모태다. 1945년 대한금속계기로 이름을 바꾼 이 기업은 백열전구를 만들고, 형광램프 자동기계를 도입하는 등 국내에서 조명기업의 시초가 됐다. 그러던 중 지금은 분리됐지만 1976년 금호그룹에 편입돼 금호전기라는 현재 기업명을 갖게 됐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지 않던 금호전기도 외환위기 당시 어려움을 겪었다. 1998년 금호전기를 이끌던 최고경영자는 금호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의 조카 박영구 사장이었다. 박 사장은 막내동생인 명구 씨를 불러 자금줄이 막힌 회사 사정을 이야기했다.

건설업체들에 신용으로 공급했던 제품의 대금이 외환위기로 인한 줄도산 여파로 떼일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사장은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막내 동생에게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박명구 부회장은 그 때부터 금호전기를 이끌게 됐다.


박 부회장은 당시 조명기기 벤처회사인 엘바산업을 이끌고 있었다. 큰 형이 막내를 신임한 이유는 그만한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대학시절부터 벤처회사를 세워 전기 안정기를 개발해 업계를 놀라게 한 젊은 기업인이었다. 그는 한국외국어대에서 영어를 전공하다 엔지니어링에 흥미를 느껴 연세대 전자공학과 77학번으로 다시 입학한 인물. 또 같은 학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까지 딴 '기술인'이었다.

◇21세기의 빛, 첨단 IT조명 개발

박 부회장은 당시 부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1000명에 달했던 임직원을 400명으로 줄이고 현금마련을 위해 마포 본사도 매각했다.

대신 '책임경영'을 내보이기 위해 자신의 집까지 담보로 삼아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발벗고 뛰었다. 그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실을 맺었다. 영국계 투자회사인 로스차일드가 5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로스차일드가 한국의 작은 중소기업에 거액을 투자한 이유는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남다르고, CCFL을 개발할 정도로 회사의 기술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필라멘트의 가열없이 저온에서 불이 켜지는 첨단 조명인 CCFL은 당시에는 생소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기술인 박 부회장은 CCFL 시장을 밝게 내다봤다. 노트북과 컴퓨터는 물론 LCD모니터, 스캐너, 팩스 등 정보화 사회를 앞당기는 제품에 필요한 필수부품이기 때문에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2000년 608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CCFL이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2002년 1004억원으로, 2003년 1159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매출액은 2810억원으로 전년보다 33% 증가했다. 박 부회장이 신사업을 개척하기 전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외형이 커진 셈이다.

금호전기는 올해 초 무전극 형광램프라는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다시한번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 수명이 무려 6만 시간, 즉 7년간 계속 켜두어도 꺼지지 않는 반영구적인 광원이다.

박명구 부회장이 주도하는 금호전기는 "21세기 빛을 선도하는 일류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인류를 이롭게 할 밝은 빛을 만드는 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성장의 원동력이다.

금호전기 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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