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성장의 압력점

머니투데이 강호병 금융부장 2007.03.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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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에서 기본은 그립이라고 한다. 그것을 잘못 잡으면 좋은 스윙이 나올 수 없다. 대체로 그립을 잘 잡았다는 것은 압력점(pressure points)이 잘 잡혔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압력점이란 클럽을 잡은 손의 힘이 가해지는 지점이다. 압력점은 왼손의 중지·약지·새끼손가락 3개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 V자계곡이다. 압력점부터 잘못 잡히면 손목과 팔에 힘이 들어가 미스샷이 나오기 일쑤다. 게다가 공을 치려는 마음만 앞선다면 결과는 뻔하다.



 한국경제의 모양새가 이와 같다. 성장 압력점부터 제대로 잡지 못하면서 최종수요(공)만 때리기 바쁘다. 그러니 뒤땅(더핑) 토핑이 나오기 일쑤요, 맞아도 방향성은 없고 거리손실이 심하다.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정보기술(IT)산업 평가보고서에는 IT산업을 동력삼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허와 실이 현실감있게 잘 정리돼 있다. 100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 분석은 "정신 안차리면 5년 후 나라경제가 혼란이 올 것"이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직감과 상통한다.



 IT산업은 2006년 수출의 35%, GDP 생산의 11%를 맡고 있는 주력산업이다. 그러나 그 효율성은 말이 아니다. 과장을 좀 하면 생산은 많이 하지만 부가가치의 3분의1은 값이 떨어져 남에게 거저주고 있고, 또 3분의1은 부품·소재 수입하느라 빠져나간다. IT산업의 반은 적선사업이나 다름없다.

 IT제품 값이 떨어지는 것이야 치열한 경쟁 때문에 그렇다 치자. 그러나 IT산업 생산의 부품·소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것은 정말 문제다. IT 생산이 생산·투자·고용·소득을 연이어 낳는 승수효과를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IT제조업 수출액의 중간재 국산화율은 평균 36.1%로 전체 수출제품 평균치 69.1%의 절반 수준이다. 휴대폰 카메라모듈, BLU 형광체의 국산화율은 0%에 가깝고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제조장비 국산화율은 17%에 불과하다. IT로 생산하고 투자해도 밖으로 새게 돼 있다.


 이는 국내에서 완결성을 갖는 IT산업 생태계, 혹은 가치사슬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원천기술에서 소재·부품·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생태계를 단단히 꾸리려는 노력이 응집력있게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든 대기업이든 "어디 화끈한 새 상품, 새 산업 없나?"는 식으로 외연으로만 생각이 뻗는다.

정부는 미래산업에 대한 비전만 거창하게 만들어놨을 뿐 기술·부품·소재 등의 압력점에 정책 지원과 기업 투자가 모이게 하는 집중력이 없다. 금융에서도 혁신형 벤처나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열을 올리지만 압력점과의 연결성이 분명하지 않다. 대기업은 기술·부품·소재투자에 앞장서기보다 최저마진 주고 국내외에서 편하게 부품·소재 사서 물건 만들어 팔기 바쁜 인상이다.

 한마디로 성장의 압력점을 우리 스스로 헛집고 있다는 뜻이다. 설사 IT를 대체할 다른 산업이 혜성처럼 나타난다고 해도 그와 같은 스피릿과 구조를 가진 다음에야 결과는 또 지금의 반복이다. 신기루 같은 트렌드를 좇아 옆으로 가기 전에 집안의 생태계나 제대로 만들어 부가가치 출력을 키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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