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모기지 부실, IT버블 붕괴와 닮아

머니투데이 김유림 기자 2007.03.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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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택시장의 모기지 부실이 핵폭탄으로 부상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금융 시장의 모럴해저드로 인해 불거진 것이며 지난 2000년 IT버블 붕괴 때와도 닮은 꼴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시간) 현재 주택시장을 둘러싼 모기지 부실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안개속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기지회사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은 물론 정부 조차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2000년 IT거품 붕괴가 미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갔던 악몽을 떠올려야 하며 사베인스 옥슬리 법안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던 월드컴·엔론 사태 보다도 더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2000년 IT버블 붕괴 때와 닮은꼴



모기지 부실을 둘러싼 현재 상황이 2000년과 닮은 점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월스트리트 투자 회사들이 '의아스러운' 모기지 업체들의 채권을 경쟁적으로 매입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모기지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현재 상황에도 월가의 낙관론자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투자자들을 더 끌어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감독 당국도 언론의 문제 제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사태를 방치하고 있으며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모호한 모기지 대출 규정을 그대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투자중독증(investment mania)들에게는 모기지 부실이 작은 문제처럼 보일 지 몰라도 미국 모기지 시장 규모가 6조5000억달러로 국채 시장 보다 크다는 점에서 결코 단순한 부실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레이엄피셔컴퍼니의 조시 로즈너 이사는 "현재 상황은 사베인스 옥슬리법이 탄생하도록 몰고간 엔론 월드컴 사태 보다 훨씬 심각하지만 의회는 상황 인식 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후 초래될 혼란이나 경제에 미칠 영향에 있어서 월드콤 엔론 사태보다 덜 하지 않다"고 말했다.



◇ 모럴해저드가 위기 불렀다

모기지 부실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은 모기지 업체들의 모럴해저드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뉴욕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발행된 미국 전체 모기지 채권 가운데 35%는 서브프라임 상품이었다. 지난 2003년만 해도 이 비율이 13% 였던 것에 비하면 급증세를 실감할 수 있다.



부실은 이들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한 상품에서도 예상할 수 있다. 이들 업체들은 담보 금액을 전혀 예치하지 않거나 충격적일 정도의 저리로 40~50년 동안 장기 모기지상품을 남발했다.

현재까지만 해도 12개 이상의 모기지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대출을 중단했다. 우량 모기지 업체들의 주가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계의 디폴트 비율은 최근 들어 12.6% 까지 상승했다.

◇ 월가 투자은행들도 '쉬쉬'



월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는 지난 1일 서브프라임모기지 업체인 뉴센추리파이낸셜에 대한 투자 의견을 상향 조정했다. 베어스턴스의 조정이 무색하게 뉴센추리는 이미 디폴트 고객이 늘고 있음을 공식화했고 최근 3주 동안 주가는 반토막 났다. 이 회사는 지난주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긴급 자금이 필요하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투자은행들은 이미 모기지 업체들과 한배를 탔기 때문에 부실을 수면 위로 드려내려 하지 않고 있다.

모기지회사들이 발행하는 채권은 1970년대부터 유통되긴 했지만 연금 펀드나 보험 회사, 투자 회사, 헤지 펀드 같은 일반 투자 기관들이 본격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이후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지난해 월스트리트 투자 회사들이 전체 모기지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했다.

가장 많이 매입한 은행은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모간스탠리, 도이체방크 등이다. 이들 기관은 모기지 채권을 매입한 후에 자사의 유동화 풀에 이 채권을 포함시킨 다음 이를 담보로 다시 증권을 발행한다.

일례로 리먼브러더스는 모기지 관련 투자가 매출 증가에 직접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업체들은 자신들이 직접 모기지 금융업체를 인수하는데도 열을 올렸다. 모간스탠리는 지난해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인 삭슨을 7억600만달러에 인수했고 메릴린치는 9월 캘리포니아 소재 주택 대출 업체인 퍼스트 프랭클린 파이낸셜을 13억달러에 샀다.

메릴린치는 이 회사를 통해 수익을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문가들은 메릴린치가 막대한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문제는 아직 터지지 않았다



UBS의 ABS리서치 담당 헤드인 톰 짐머맨은 최근 투자자들과 가진 컨퍼런스 콜에서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속도에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기관들은 아직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데 소극적인 모습이다. UBS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여러가지로 상정하면서 주택 가격이 떨어지거나 최소한 보합을 유지할 경우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뉴센추리를 상향 조정했던 베어스턴스도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거품이 터진 후에 몰려올 도미노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신용평가사들이 모기지 업체의 신용도를 하향 조정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이들 업체의 채권을 매입한 월가 투자 은행들이 정확한 부실 채권 보유액수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주택 컨설팅업체인 롤러이코노미의 토마스 롤러 사장은 "지난해 BBB에서 BBB-를 받은 모기지 회사 채권의 20%는 올 연말까지 신용등급이 강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들은 아직까지 신용등급을 조정하려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롤러 사장은 "이 문제에 포함된 모기지 업체와 월스트리트 회사, 신용평가사 등은 한 배를 타고 있기 때문에 봄 시즌에 주택 시장이 활기를 되찾아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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