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싼동네 비싼동네'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2007.03.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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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이름은 조선시대 유학기관인 성균관의 맥을 이은 명륜(明倫)학원이 있어 붙여진 것이다. 명륜동에는 조선시대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의 생가 터가 있고, 성균관과 창덕궁 문묘 등 있어 꼿꼿한 선비정신과 예의 학풍이 살아있다.

성대 위쪽으로 완만하게 형성된 주택가는 전통의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성북동과 자연스레 이어지면서 '윗동네·아랫동네'를 이룬다. 1년전께 브라운스톤 재개발 아파트가 입주를 마쳤고, 인근 삼성동에는 주상복합건물과 재개발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새단장이 활발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신문과의 합동인터뷰에서 "저도 여의도에서 명륜동으로 가면서 돈이 많이 남았다. 비싼동네서 싼동네로 이사 가면 양도세 10% 내고도 돈 많이 남는다"며 양도세를 완화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도세 부담이 높아 집을 못 판다는 주장은 부동산을 흔들려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퍼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싼동네'에서 '싼동네'로 옮기는 게 그리 쉬운 일일까. 살던 곳 또는 가까워 익숙해 있는 곳에서 계속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새벽이면 공원에서 동네사람들과 배드민턴과 산보를 즐기시는 어르신께 자손들이 세금때문에 낯선 싼동네로 가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차마 말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종교활동을 많이 하시는 노인분들은 다니시던 성당이나 교회 등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문제가 만만치않다. 어르신일수록 헤어짐도, 새로운 만남도 쉽지 않아서다.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의 전학이 학교만 옮기는 것에서 그치면 간단하다. 친구도, 추억도 다 놓아야 한다. 이러한 관념은 관두고 현실을 들여다보자.


강남집값이 비싼 이유는 여럿이지만 학군과 학원이 집값에 주는 영향이 적잖다. 교육여건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비싼동네에 입성하려는 게 현실인데, 살던 비싼동네에서 싼동네로 옮기기가 말처럼 쉽겠는가.

노 대통령은 세금 형평성을 강조하며 미국 사례를 들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보유세는 우리보다 많이 걷지만 양도세에서는 많은 유연성을 갖고 있다.



은퇴노인이 살던 집을 팔고 임대주택으로 옮기면 양도차익으로 편안한 노후를 즐기라며 양도세를 면제하는 국가가 적잖고 양도세가 아예 없는 선진국도 있다. 본인 스스로 노후문제를 해결하니 고령화시대에 국가로서는 부담을 더는 셈이다.

지난해 정부가 거둬들인 주택양도세는 2조원이고,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국민혈세 1조원을 쏟아부었다. 조세 형평성을 갖자는 말은 백번 옳지만,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공무원에게 1조원을 지원하면서 2조원 규모의 세목을 놓고 죽어가는 주택시장을 놓고 논리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사고의 형평성이 없어 보인다.

우리 정서에는 '윗동네' '아랫동네' 또는 '윗마을' '아랫마을'이 살갑다. '비싼동네'나 '싼동네'라는 말은 인간적이지 않아 삭막하다. 선비들이 시대정신과 예의를 논하던 명륜동은 '싼동네'가 됐다.



어디 명륜동 뿐이랴. 어느덧 '비싼동네 싼동네'로 구분짓는 데 더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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