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기간에는 일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임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당연한 원칙이 파업의 현장에서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조는 사용자의 이 말을 일종의 엄포로 들을 뿐이다. 왜? 파업이 끝난 뒤 격려금, 생산성향상 지원금 등 다양한 형태로 파업기간에 지불되지 못한 임금이 지급되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노사관계의 고질이 바로 이 관행이다.
현대 자동차. 글로벌 5를 바라보는 이 회사가 최근의 노조 파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이 원칙을 천명했다. 여론과 정치권 심지어는 시민들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서 ‘이번에는 반드시 이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commitment.. 약속 혹은 확약(確約)이라고 번역한다. 단언적으로 내세우는 혹은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조건 혹은 약속을 의미한다. 그러니 적당한 한국 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확약은 대개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take it or leave it)’의 형태를 띤다.
예컨대, ‘당신이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면 내 성을 갈겠다’ ‘ 100만원 이하로 저 중고 자동차를 팔면 내 가게를 내어 놓겠다’ ‘테러범과 협상을 하면 정권을 내어 놓겠다’ 와 같은 형태를 띤다.
자동차 한 대 팔려고 자신의 가게를 내어 놓지는 않을 것이기에 저 자동차는 정말 100만원 정도 하구나. 정치가가 정권을 내어놓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아하 우리 테러범과 협상은 하지 않겠구나.
그렇다. 확약의 효과는 자신의 한 말이 ‘얼마나 믿을만한 가’에 달려있다. 그러니 자신이 한 확약의 효과를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burn the bridge behind)이다. 자신을 스스로 옭아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확약을 상대방이 믿어주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공수표가 되고 만다. 흥, 죽을 정도로 나를 사랑한다고? 어디서 거짓말 하는거야? 그러면 한 번 죽어봐. 뭐 성을 갈겠다고? 성 정도 바꾸는 것이 무슨 큰 일이라고 자신을 믿어라는 거야.
가게를 내어 놓겠다고?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있지 않은 가게를 내어 놓는 것이 무슨 큰 일이야. 정권을 내어 놓겠다고. 도대체 그런 규정이 어디 있는거야? (만약 헌법에 이런 규정이 있다면 테러범들은 이 확약을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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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가? 그렇다. 이 확약들은 도대체 ‘믿을 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자신의 퇴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전적 협상론의 기본 토대를 구축한 토마스 쉘링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제약할 수 있는 힘은(그래서 상대방의 믿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협상력)은) 스스로를 구속할 수 있는 힘에 의존한다.”
무슨 말인가? 스스로를 구속한다는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혹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직 그럴 경우에만 상대방의 믿음을 변화시킬 수 있고, 상대방의 믿음이 변할 경우에야 협상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기 말이 ‘진실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 협상력의 기초라는 것이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겠다.’ 노조가 이 말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는 ‘자신의 퇴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현대를 포함한 우리의 많은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엉거주춤하게 타협해온 과거의 관행들이 이 원칙을 ‘엉터리 협박’으로 믿게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노조로 하여금 이 원칙을 믿게 할 수 있을까?
공장 하나를 폐쇄할 정도로, 흑자가 적자로 반전될 정도로 타협하지 않고 이 원칙을 밀고 나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 당신은 당신의 말에 대해서 주위 사람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신뢰를 받고 있는가? 다시 말해 당신은 믿을만한 사람인가? (협상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