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눈(目)에 가시찔린 민(民)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2006.11.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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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 집권 당시 건설부 장관이 모 일간지에 기고를 했다가 치도곤을 당했다. 그는 기고문에 토지공개념의 장점을 늘어놓다 '덜컥수'를 놓아버렸다. "분양가의 자율화가 필요하다"는 단 한줄의 글귀. 이 한줄은 재앙이었다.

건설부 장관의 글이다보니 백성들은 정부가 분양가를 자율화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집값 폭등이 시작됐다. 5공시절 모든 자재를 올림픽 준비에 쏟아붓느라 주택공급이 부족한 바람에 노태우 정권들어 주택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신도시 개발 등 주택2백만가구 공급계획을 내놓으며 주택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던 차에 해당 부처의 수장이 불씨에 기름을 부어버린 셈이다.



건설부는 "분양가의 자율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장관 개인의 '소신'일 뿐 정부정책과는 관계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불길은 요원을 뒤덮어버린 뒤였다.

집값 전셋값 폭등세는 공포 그 자체였다. 서울의 무주택자들은 광명으로, 성남으로, 안산으로 쫓겨넜고, 광명에서, 성남에서, 안산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는 자살이라는 가서는 안될 길을 택하기도 했다. 참다못한 전세입자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야 했다.



집값은 집값대로 폭등했고, 정부규제의 상징이었던 분양가 자율화는 이뤄지지도 않았다. 수장의 신중하지 못한 소신 발언으로 우리 사회는 그 가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했다.

지난 1일 건교부에 대한 국회 건교위 국감에서 추병직 장관의 검단신도시와 관련한 '덜컥' 발언이 소신에 의한 단독행위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주택문제에 관한한 전문가로서, 30만평짜리 10개의 도시보다 300만평짜리 1개 신도시가 낫다는 평소 '소신'에 따라 신도시발언을 꺼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5개 신도시를 발표할 때 담당 과장이었다"며 "신도시 발표에 따른 어느 정도 혼란은 감수해야 하고 사전 준비도 철저히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한번 장관의 소신으로 인해 집값상승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인천은 물론 서울 강남에 이르기까지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

다 지어놓아도 팔리지 않던 아파트를 분양받으려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는가 하면, 수십년째 오르지 않던 지역의 집값이 뛰고, 어떤 지역 아파트는 일주일에 1억원씩 폭등하고 있다. 집없는 사람에게는 물론 집가진 사람에게도 이런 집값의 움직임은 공포스럽다.

이번 추 장관의 검단신도시 발표는 청와대조차 미스테리로 여기고 있다. 당정이 8·31후속대책으로 공급확대 방안을 검토하던 중 추 장관이 '뜬금없이' 신도시 발언을 터뜨렸고, 이로인해 전국의 집값이 엉망이 되버렸기 때문이다.

추 장관의 소신발언이 전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계기로 청와대와 재경부, 건교부 등이 부동산정책의 실패 논란을 벌이고 있다. 자중지란일 수도 있지만 이런 논란을 벌이는 것만도 성과다.

역사는 반복됐다. 눈(目)에 가시찔린 '민(民)'의 고통도 더불어 반복됐다. 다만, 8·31대책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다며 나라로부터 훈장을 받은 관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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