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에게도 어딘가 선량한 구석이 숨어 있다. 반대로 착한 여자는 나쁜 것에 물들며 받아 들인다. 이렇게 나쁜 남자의 선량한 구석과 착한 여자의 불량한 구석이 만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 동정하고 의지한다.
나는 이 영화가 싫다. 불편한 얘기를 너무 적나라하게 끌고가기 때문이다. 감독은 내가 불편해 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나는 무시당한 기분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바로 내 안에도 나쁜 것과 착한 것이 공존하고 있다는 비밀을 들춰내는 것 같다.
영화 평을 쓰려는 게 아니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자. 한 검사가 피의자의 수뢰 혐의를 밝히기 위해 그의 통화내역을 조사했다. 그러나 단서는 잡히지 않고 애인이 셋이라는 사실만 드러난다.
"그러면 당신은?" 혹시 이 대목에서 찔리는 분이 이런 질문을 던질 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애인이 있는가? 그건 차마 밝히지 못하겠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비밀이니까, 나의 고백이 다른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니까….
대신 나의 착한 구석은 자랑 좀 해야겠다. 나는 `착한 남자'다. 어렸을 때는 말 잘 듣는 아이였고, 학교 다닐 때는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지금은 착한 가장이요, 착한 아빠다. 직장에서는 마음 좋은 `물부장'이고, 사회에서는 선량한 시민이다.
이처럼 착해지기 위해 애도 많이 쓴다. 빠짐 없이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주변의 관혼상제도 섭섭치 않게 들여다 본다. 힘들고 속상해도 남자답게 꾹 참고 의연하게 표정관리를 한다.
이렇게 남자다움을 과시하려는 속성을 `마초 근성', `남자다운 남자'인 척 하려는 증상을 `존 웨인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우리 식으로는 `변강쇠 증후군' 또는 `훈이 아빠 증후군' 정도가 아닐까.
호스피스 운동에 평생을 받쳤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그녀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들은) 그동안 자기가 맡은 역할이 너무 무거웠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지금 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기쁘다.' 또한 자신이 그동안 다른 이들을 속여 왔음을 깨닫습니다. '난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려 했다. 착하게 굴어서 다른 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면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
나는 사실 착하지 않다. 착한 건 내가 아니다. 그건 내가 맡은 역할을 남의 기대에 맞춰 착하게 수행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다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착한 척 하다 보니 이젠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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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나의 다른 한편인 나쁜 구석은 잘 숨겨 놓았으니 보이는 건 '착한 남자'뿐이다. 한쪽은 공공의 비밀로 감추고, 다른 한쪽은 부풀리면서 사니 진짜 나를 대면할 틈이 없다.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나는 오늘도 '착한 남자' 되기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