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잠망경]KT결합판매 약인가,독인가

윤미경 기자 2006.09.04 07:57
글자크기

결합판매 허용은 변화의 작은 시작일 뿐

통신서비스 결합상품 판매에 대해 오랜 고심을 해왔던 정보통신부가 요금할인을 포함한 결합판매를 허용하겠다는 쪽으로 방침을 굳혔다.

정통부의 이같은 방침에 KT가 가장 반색하고 있다. 지금도 결합상품 판매가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지배적사업자인 KT와 SK텔레콤은 결합상품에 대해 요금할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케팅 활동에 적지않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동전화 외에 다른 상품이 없는 SK텔레콤 입장에선 '결합상품 요금할인'에 대한 메리트가 적다.



그러나 KT는 다르다.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초고속인터넷 그리고 최근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와이브로까지 포함해서 '묶음상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나로텔레콤이 이미 초고속인터넷과 시내전화를 할인된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고, 케이블방송사들도 케이블TV와 초고속인터넷을 최대 3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마당에 KT만 발목이 묶여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기껏 시작한 'KT 원폰'도 유선전화와 이동전화의 결합상품이건만 전혀 요금을 할인해줄 수 없었다. 게다가 2000억원 넘게 투자해 상용화한 와이브로도 이 때문에 절름발이 서비스가 될 신세다.

이런 상황에서 정통부의 요금할인을 포함한 결합상품 허용 방침은 KT 입장에선 '목구멍에 걸린 가시'가 빠지는 느낌일 것이다.

정통부 방침에 후발통신업체들의 반발은 매우 거세다. KT는 다른 통신업체와 다르게 필수설비 보유업체일 뿐만 아니라 시내전화 시장점유율이 92%가 넘고 초고속인터넷 시장도 절반 가량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결합상품에 대한 `약탈적' 가격형성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차세대 IP-TV나 홈네트워크 등으로 시장지배력이 전이된다면 독점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물론 이런 우려가 현실로 드러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장에서 KT의 영향력이 언제까지나 불변할 수 있을까. 당장은 KT가 결합상품 요금할인 허용으로 큰 수혜를 입을 것이다. 그렇지만 좀더 길게 보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결합상품의 범위는 유선과 무선, 통신과 방송 전반에 걸쳐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전화(VoIP)' 시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결합판매 요금할인이 허용되면 인터넷전화와 일반유선전화(PSTN)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통화권 구분이 없는 인터넷전화와 통화권 구분이 있는 일반유선전화(PSTN)가 동등한 조건이 되려면 PSTN의 '시내+시외' 결합판매가 허용돼야 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전화에 대한 번호이동제 도입도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야 경쟁이 '동등'해지니까.

인터넷전화가 PSTN과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하게 된다면 시장파괴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종합유선방송쪽 연합군인 한국케이블텔레콤(KCT)도 인터넷전화 역무허가를 받고 법인설립을 최근 마쳤다. KCT는 조만간 인터넷전화와 초고속인터넷 그리고 방송을 묶은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 결합상품으로 파상공세를 펼칠 것이다. 데이콤 등 후발업체도 인터넷전화 시장으로 이미 무게추를 이동하고 있다.

반면 KT는 '92%' PSTN 시내전화 시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전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흉내내기에 그칠 뿐, 점차 세력을 잃어갈 PSTN 사업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PSTN 자리는 좁아지는데 비해 와이브로같은 신성장 상품은 재판매 의무화가 기정사실화돼 있어, KT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별로 넓지 않다. 게다가 결합판매 굴레를 벗으면서 사후규제 강도는 지금보다 강해질 것이다.

공룡은 지구의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멸종됐다. 통신시장에 '공룡'으로 불리는 KT 역시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결합판매' 허용은 이제 변화의 작은 시작일 뿐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