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노'(NO)라고 말하라"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6.02.2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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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 CEO 그랑프리 `아름다운 CEO`상 ―박종규 KSS해운 고문 인터뷰(중)]

"당당하게 '노'(NO)라고 말하라"


간디는 틈나는 대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일체의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서서 세파를 헤쳐 나가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만큼 참된 지도자의 길은 외롭고 어려운 법이다.

박종규(70) KSS해운 고문은 창업 당시부터 자식에게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



굳건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종업원과 주주가 제대로 대접받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항상 기업의 리더가 될 만한 최고경영자(CEO)의 재목을 눈여겨 살펴야 했다.

# 반대할 줄 알아야



박 고문은 자신만의 경영자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자기를 버릴 각오를 하면 솟아날 구멍이 생깁니다. 리더라면 과감히 자기를 버릴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만약 리더에게 그런 정신이 없으면 조직도 죽고 자신도 죽습니다. 전 오직 이 정신으로 지난 30년동안 기업을 꾸려왔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그만의 독특한 인사관을 갖고 있었다. "전 신입사원을 뽑을 때 고향이나 출신학교를 따져본 적이 없습니다. 간부사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다만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의 두리뭉실한 타입보다는 개성이 분명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물론 공사가 분명한 도덕성은 기본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사장의 말에 반대를 많이 하는 간부를 주로 눈여겨 보았다. "보통 사장의 눈치를 봐가며 사장이 좋아하는 방안에 찬성하면 자기의 신상엔 좋지요. 하지만 사장이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반대할 줄 아는 간부가 진심으로 회사를 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류의 사람들은 책임감도 강하다는 것이 박 고문의 생각이었다. "사실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반대하면 밉지요. 하지만 그런 반대 덕분에 신중하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소신껏 상사에게 '노'(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회사를 키워갈 수 있는 겁니다."

# 동기 부여



이 대목에서 궁금증 하나가 생겼다. 리베이트 없이 소신대로 사업을 해온 그였다. 비록 회사를 알차게는 만들었지만, 훨씬 더 크게 키우지 못한 회한도 있을 것 같았다. "원칙을 지키면서 회사를 키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겠지요. 하지만 양 쪽을 다 충족할 수 없다면 한 쪽은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직하게 사업을 하면서 경쟁을 통해 닦은 실력만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같습니다."

그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은 것은 자식들이 한솥밥을 먹다가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서로 반목하게 되는 경우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가정적인 관점에서 나온 소박한 이유이구요, 회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당한 경쟁을 거치지 않은 CEO가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튼튼하고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나도 잘만하면 나중에 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긍지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주의 아들이라는 신분만으로 CEO가 된다면, 직원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장을 할 수 없다면 사기가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도 전문경영인 체제가 전적으로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사실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개별 기업이나 산업에 따라 제각각 경우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통계적인 문제입니다. 이웃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제대로 된 전문경영인 체제의 기업이 크게 성장하면서도 오래 가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 따뜻한 마음

선배 기업인으로서 좀 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앞으로 경영자가 되고 싶다면 환율 문제에 정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문제에서 전문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늘 관심을 가지면서 세계 경제 동향을 주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기업에서 위험회피를 위한 환율 문제는 `잘 해야 본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일수록 리더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는 또 연구비를 아껴선 안된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80년대 극심한 해운불황속에서 주력분야를 화학약품 운송에서 가스운송으로 바꿔 재도약의 발판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장분석을 하기 위해 국제적 연구기관에서 나온 연구보고서를 구입하는 데만 10만달러를 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영자라면 따뜻한 마음을 잃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이끌려면 무엇보다 뛰어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픔을 알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랑으로 직원들을 대할 때 노사분쟁도 생기지 않습니다. 인간애가 풍부한 사람이 큰일도 할 수 있고, 최고의 기업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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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골을 동해 바다에 뿌려라" -[제1회 한국 CEO 그랑프리 `아름다운 CEO`상 ―박종규 KSS해운 고문 인터뷰(상)]



  
☞박종규 고문은...

박종규 KSS해운 고문은 1961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국영기업인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해 10년동안 재직하면서 거의 우리나라 최초라 할 수 있는 우리사주조합 운동을 펼쳤다.
 
박 고문은 1970년 KSS해운을 설립, 이전까지 불모지였던 화학약품 등 특수화물 운송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는 우리나라 해운 산업의 태동기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해운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한국선주협회 부회장과 해무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일하면서 노사화합과 해운인력 양성 및 법제 개편 등을 주도했다.
 
뿐만 아니라 박 고문은 KSS해운을 `작지만 강한` 회사로 키워냈다. 업계에서 `작은 거인`로 불리는 KSS해운은 대형 가스선 분야에서 동남아 굴지의 선단을 갖추고 있으며, 외환위기 당시에도 연속 흑자를 기록할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또 1995년부터 국내 유일의 남북 직항로 사업을 꾸준히 수행해오고 있다.
 
해운업계에 끼친 이같은 발자취에 더해 박 고문은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경영자상을 만드는 데도 매진해왔다. 그는 과거 해운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리베이트`와 밀수를 근절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해냈다. 회계결산도 직원들이 알아서 수행하도록 해 분식회계의 뿌리부터 근절했다. 아울러 본인 소유의 주식까지 출연해가며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했고, 경영권을 자식에게 세습하지 않고 굳건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들었다.
 
바른경제동인회 활동을 통해 기업의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세금공제 제도를 도입하는 데 앞장서며 바른 경영을 위한 사회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유서쓰기 운동` 등 다양한 시민사회 활동을 펼쳤다. 현재도 규제개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기업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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