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 극복한 '최종현의 힘'

특별취재팀 2005.11.07 11:44
글자크기

[한국의 산업]<3>정유·유화산업-②성장기...국가위기 '탈출'

1978년 10월, 이란의 정치적 소요사태는 폭동으로 발전했고 이듬해 1월 16일 팔레비 왕정이 무너졌다. 이란의 석유수출 중단과 함께 국제 석유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경제는 마비되기 시작했다.

석유위기에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국내 기업 환경은 극도로 악화됐다. 원유가격 급등과 원유 재고 부족은 많은 기업들을 부도 일보 직전까지 내몰았다.



당시 우리나라의 원유재고는 열흘분 밖에 남지 않아 국가적으로 위기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1979년 12월 13일 고(故)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최 회장은 당시 산유국 인맥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던 당시 김창호 부장(전 SK유통 사장)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친구들에게 하루 5만배럴만 달라고 요청하라 "고 지시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하루 5만배럴이면 수급 안정이 가능한 물량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최 회장이 6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사우디 친구들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우디로 떠난 김 부장은 이틀 뒤 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하루 5만배럴의 원유를 확보했다는 낭보를 전했다.


사우디 정부가 최 회장과의 인연을 중요시해 벨기에로 향할 예정이었던 물량을 한국으로 돌린 것.

최 회장은 1980년 3월 19일 3년간 하루 5만배럴의 원유를 배럴당 24달러에 공급받는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사우디 정부는 최 회장과의 당초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약 체결과정에서 지연된 3개월 분의 물량도 소급해 공급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경제적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최 회장의 사우디 친구들과의 인연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 회장은 섬유의 원료가 석유인 점에 착안, '섬유에서 석유까지 수직계열화'라는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1973년 선경석유를 설립, 본격적인 정유공장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쟁 발발과 그로 인한 제1차 석유파동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난 인맥들은 최 회장의 힘이 됐다. 중동 사람들은 오랜 세월 사막이라는 한계 상황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좀처럼 남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믿음을 주면 변하는 법이 없었다.

최 회장의 사우디 인맥은 1973년 왕비의 조카인 베드라위의 사업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적극 추진하던 정유공장 설립은 무산됐지만 그 과정에서 베드라위와 인연을 맺은 최 회장은 불포화 폴리에스터 수지 공장을 짓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두 말않고 2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당장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거금을 선뜻 내놓았던 것.

이렇게 시작된 최 회장과 사우디와의 인연은 왕실 특사 죡달,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민의 자말자와 부총재, 야마니 석유장관 등과 이어졌다. 이들은 제1차 석유파동 당시에도 한국에 원유 수출금지 조치를 해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이란 및 일부 국가의 감산으로 시작된 제2차 석유파동은 국내 정유업계에도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유공의 지분 50%와 경영권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 걸프가 원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오다 결국 1980년 3월 유공에 대한 원유공급을 중단한 것. 이는 최 회장이 사우디에서 원유를 구해오기 직전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걸프는 결국 1980년 8월 19일 한국 철수를 결정했고 2개월 뒤 정부는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유공은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유일한 기업이었다.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이 유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정부는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원유 확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인수 자격으로 원유의 장기적, 안정적 확보 능력을 우선적으로 내걸었다.



결국 그해 11월 28일 선경그룹이 쟁쟁한 대기업들을 제치고 유공 인수자로 최종 결정됐다.

선경이 유공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최 회장이 그 동안 쌓아온 산유국 인맥과 이를 통한 원유 확보 능력이 크게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특별취재팀】성화용 부장, 이승제, 이정배 차장, 유일한, 이승호, 원정호, 김용관, 김경환, 최정호, 박준식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