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병칼럼]외환보유액의 정치경제학

머니투데이 강호병 금융부장 2005.05.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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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 일부를 헐어 수익성 높은 곳에 쓰자는 얘기가 너무 쉽게 나온다. 경제위기를 비켜가고도 남을 정도로 외환보유액이 지나치게 많이 쌓였으니 기업 투자자금 등 경제성장효과가 높은 곳에 사용하여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시중은행들도 GM사태 등으로 해외자금조달여건이 좀 악화됐다며 한은보유 외환을 활용케 해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다. 이미 외환보유액중 170억달러는 오는 7월출범하는 한국투자공사(KIC)에 위탁운용재원으로 출연토록 돼 있다.

 외환보유액 효율적 운용론이 나오는 심정은 이해간다. 경상수지 흑자, 외국인주식투자자금 등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러를 한은이 사는데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또 그렇게 쌓아놓은 외환보유액이 미재무성 증권 등 저금리자산에 투자하는데 따른 기회비용도 적지 않다.



 그러나 외환보유액 운용문제는 국제금융시장 흐름, 세계경제의 성장구도, 우리나라 대미수출과 연관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미동맹의 경제적 확인수단으로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뭔가를 얻어낼 수 있는 거래수단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외환보유액 효율적 운용문제를 우리나라만의 경제논리를 앞세워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 2조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한 아시아 중앙은행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를 보전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다. GDP의 6%까지 불어난 막대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미국이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을 자임하며 국내 과소비현상을 적당히 방치한 결과다. 아시아국가는 그러한 미국의 태도에 편승하여 대미수출을 통해 성장모멘텀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성장구도는 아시아 국가가 대미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외환을 중앙은행에 모아뒀다가 다시 미국채 등 달러자산을 매입하는 형태로 미국으로 환류시키는 암묵적인 합의행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아시아국가들이 미국채를 판다든가 보유 외환구성을 유로나 엔화로 바꾼다면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보전이 불가능해져 달러가치와 미국채값은 폭락하고 국제금융시장, 세계경제경제는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질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이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 운용행보와 관련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 2월 한은이 보고서에 언급한 `투자대상 다변화'란 말 한줄과 FT에 보도된 박승총재의 `외환시장 불개입설' 때문에 국내외 외환시장이 충격을 받는 일이 이어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외환보유액 수익률 제고 등 명분으로 한국투자공사에 위탁운용되는 170억달러도 미국에게는 신경쓰이는 요소일 것이다.

외환보유액 운용문제는 미국 주도의 불균형 성장과 불안정한 국제 달러환류메커니즘을 수정하는 국제적 공조노력과 같이가야할 문제다. 세계경제성장, 수출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를 외환매입과 운용에 따르는 기회비용만 보고 그 운용방향을 정책당국자가 함부로 입밖에 내서는 안된다.


지금 아시아는 수출이라는 실물에서 이익을 얻고 금융이익에서는 손실을 보면서 미국과 적당히 공존하는 바터행위를 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미국채 매입에 따르는 외환운용 기회비용은 수출을 위해 지불해야 할 `또다른 국방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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