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의경영코칭]점집으로 간 CEO

고현숙 한국코칭센터 부사장 2004.12.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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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답을 잘 맞추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퀴즈 쇼에서 어려운 문제만 잘 맞춰도 대단한 갈채와 존경을 받는데, 하물며 생판 모르는 사람의 과거와 가족 내력을 점으로 맞추는데야…. 놀라움과 경외감이 없을 수 없다.

용하기로 소문났다는 한남동 도사님이 있었다. 선배 한 분이 거길 찾아갔는데, 그 도사는 "당신 사주는 대학은 서울대를 가는데 과는 사대나 농대를 가는 사주다"라고 말했다. 서울 사대를 졸업한 이 선배는 그 자리에서 거의 뒤로 넘어갈 뻔했단다.



그 뿐이랴. 광명시 만신님, 신촌의 애기동자님에서 역삼동의 사주카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첨단을 구가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점집과 무속이 넘쳐난다.

어떤 점집은 실력을 입증하는 레퍼런스를 들먹이기도 한다. 큰 기업 모모 사장이 오고, 모모 연예인이 오고, 모모 정치인이 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까지 온단다. 믿거나 말거나! 직업별로 보면 사업하는 사람들이 점집에 가는 일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 부인까지 합하면 아마도 점집의 가장 빈도 높은 고객 중 하나일 가능성도 있겠다.



어떤 CEO는 점쟁이로부터 당신은 절대 사업하지 말라는 단언을 들었다. 공직에서 일해야지 사기업에서 일하면 절대 성공 못하고 인생이 괴롭다는…. 그런 그가 지금은 매우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점쟁이 말이 분명 틀렸지만, 뭐라 하겠는가? 원래 예언이란 맞으면 칭송 받고 틀리면 잊어버리는 것. 여전히 점집이 성업 중인 비밀이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CEO들은 왜 점집을 찾을까? 어떤 마음으로 가는 걸까?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라고 할까. 워낙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이 불안해서, 절대적인 성공 기준을 찾기 어렵다고 느낄 때, 위안이 필요할 때, 실패했을 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믿기 어려울 때. 그런 경우 누구든 뭔가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가. 그럴 때 용한 점쟁이가 있단 소릴 들으면, 그게 뻔히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 가보게 되는 것이다.

CEO들은 사실 외롭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나고 많은 의사소통을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털어놓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알 수 없는 점쟁이 앞에 가서 고민을 털어놓는다.


1980년에 대학에 들어간 나의 20대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그때 나는 '인생의 스승'을 찾으려고 애썼다. 정말 지혜로운 스승. 그가 행하는 대로 따라만 하면 되는, 혹은 그가 시키는 그대로만 하면 그게 올바른 길이 될, 그런 스승이 어디 없을까. '내 절박한 질문들을 명쾌하게 해결해 줄 스승은 어디에 있나.' 애타게 찾았으나 그런 스승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책 속에서, 친구와 선배의 모습에서, 이웃과 사회를 통해 그런 스승이 했음직한 이야기의 단편들을 듣고 또 보았다.

글로벌 기업의 유명한 CEO들은 스승을 찾는 대신 개인 코치를 두고 있다. GE의 잭 웰치 회장도 그렇고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회장도 그렇다. 막중한 자리에 있는 CEO일수록 코치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오히려 조직 내 이해관계가 없고, 자신이 잘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해 주는 코치가 가장 속 깊은 의논상대가 되는 것이다. 예전엔 CEO들이 만나면 서로 "당신도 코치가 있느냐"를 물었지만 이제는 "당신 코치는 누굽니까"를 묻는다고 얼마 전 내한했던 샌디 바일러스 ICF(국제코치연맹) 회장은 말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계속 해야 하고, 다양한 견해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려울수록 문제의 핵심과 해결의 방향, 실행 계획을 함께 정리해주는 코치와의 대화는 가치가 있게 된다. 글로벌 CEO들이 코치를 고용하고 있는 이유나 일부 CEO들이 용한 점집을 찾아가는 것이나 그 고민의 뿌리는 같을지 모른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자신이 갖고 있지만, 뭔가에 기대어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

점쟁이가 아무리 용해도 그 처방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이가 별로 없는 이유도 결국 판단과 실행은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 내가 찾아 헤매었던 인생의 스승도 따로 있지 않았다. 세상의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느리게, 하나씩 하나씩 지혜가 쌓여가면서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이제라도 깨달아 보는 것이다.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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