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 】비무장지대 철책에 갇힌 아~ 벽란도!

머니투데이 이백규 기자 2004.10.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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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기행下 고려 최대 무역항 개성 벽란도는 "접근금지"...특구 10개는 되야 통일!

북에 가면 남의 정주영과 1001마리의 소떼가 있다. 긴장감이 감도는 비무장 지대 철책선을 지나 한 1킬로미터.

개성공단 시범단지 건설 현장의 현대아산 사무소을 들어서면 마당 복판 사무실 건물 앞에 98년 10월27일 소떼를 몰고 월북하는 고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그 뒤 소떼 사이로 보이는 김윤규 현대아산회장 모습을 담은 초대형 사진 그림판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로부터 6년에 6일이 모자르게 지난 지금, 한 실향 노인의 집념은 마침내 남북의 합작품, 남북 경제교류의 새 패러다임을 선보이는 개성공단 입주공장 기공식을 갖는 결실을 맺게 했다.



개성공단은 북에 군사적 양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 근간을 부정하는 큰 양보를 했다. 그만큼 내부 사정이 절박하다.

개성공단 및 신도시 부지 2000만평은 여의도의 20배, 기존 도시 개성의 5배 규모다. 이땅을 50년간 한국 2000개 기업에게 무상으로 내놓았다. 임금은 월57.5달러, 한화 7만원 상당이다. 초저임금이다.



더구나 매년 인상율은 5% 이내로 한다고 규정한 개성공업지구 특별법을 북한 의회는 통과시켰다. 노동자가 주인인 나라에서 노임을 많이 못올리게 못박은 것이다. 노동자 희생을 감수하고 자본가를 유인해야할 만큼 사회주의 시스템에 고장이 났고 이를 하루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북 당국자들의 절박함에서 나온 양보요 후퇴다.

개성의 5배에 달하는 개성공단, 그보다 더 큰 금강산 특구. 여기는 북한내 한국의 영토이자 어디를 가나 녹색의 현대 삼각기가 휘날리는 현대공화국이었다. 현대아산은 골프장을 짓고 여기서 20리 8킬로 떨어진 고려의 옛수도 개성을 배후로 관광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현대 주식을 산 또 다른 이유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며 고려를 배반하고 새국가를 건국하려는 이성계 무리에 가까이 가지 말 것을 당부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거스르고 선죽교 건너 이성계 집에 갔다가 오는 길에 철퇴를 맞아 죽은 사육신 정몽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이성계의 회유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로 답하는 정몽주의 일화와 999명의 남성을 유혹했지만 결국 서화담은 꼬드기지 못해 달리 1000명의 남성을 채웠다는 황진이, 삼국 분단이래 처음으로 민족통일국가를 연 왕건이 태어나고 죽고 왕릉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의 도시. 이런 설명을 고려민속박물관 남남북녀의 여자 안내원 동무(남한관광객도 그렇게 부르기고 약속돼있다)로부터 듣고 있다보면 북이 그리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닌듯했다.

개성은 정치와 밤놀이만의 1000년전 고도가 아니다. 개성은 당시는 물론 이후 조선시대에도 한반도 최대의 경제중심지이자 국제 교류처였다."북은 탈북자, 남은 탈남자..."

그 여자 안내원의 이어지는 설명. 우리나라의 3대 깍쟁이는 서울 수원 개성 깍쟁이다. 하지만 개성 깍쟁이는 다르다. 그 어원이 가게쟁이로, 발음상 갓쟁이-각쟁이-깍쟁이로 변했다.

인삼-비단 등의 고려-송나라, 일본, 남양, 중동 아라비아간 중개무역이 번성해지면서 벽란도에서 개경을 잇는 30리 10여킬로미터 길에는 가게들이 오밀조밀 꽉 들어차 비오는 날 우산 없이 가게 처마 밑으로만 걸어도 비안맞는 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렇게 가게가 많다 보니, 가게쟁이 천지다 해서 갓쟁이가 됐다는 설명이다. 터무니 없는듯 하지만 고구려와 고려의 기상이 살아있는듯해 듣기 좋았고 그 옛날 우리 민족의 영화를 떠올리니 이 역시 흐믓한 일이었다.

우리가 지금 할려는 동북아의 중심 허브를 1000년전 고려인 코리안은 벽란도와 개경에서 이미 해냈던 것이다.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고 비취색의 은은하고 고고한 명품 고려청자를 빚었던 것이다.

개성상인, 송상은 최인호 소설 상도로 유명해진 임상옥이 활약한 조선중기까지 한국 최고, 최대의 경제계 인맥을 형성하고 지점망인 부보상 체계를 갖춰 우리 경제를 좌우한다.

하지만 조선 중반 이후 한성 상인들이 커지고 일제시대, 남북 분단을 맞으며 송상의 영향력을 급속히 약화되고 마침내 지금은 있는듯 없는듯 한다. 하지만 개경 출신들의 신용을 목숨같이 중히 여기는 상인정신과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할줄 아는 상술은 지금도 정신적 맥이 이어지고 있다.

태평양 화학의 고서성환회장, 한국화장품 임광정회장, 동양화학 그룹의 이회림-이수영 부자, 삼립식품의 허창성회장과 두 아들, 영풍그룹의 장철진사장, 신도리코의 우상기회장, 오뚜기식품의 함태호회장, 해성그룹의 단사천회장, 에이스침대의 안유수회장, 광화문 곰 고성일사장, 개성상회의 한창수회장....

삼성 LG 현대에 빛이 가려 크데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무수히 많은 작지만 강한 초우량 기업인이 개성출신으로 송상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송상의 후예들은 굳이 밖에 알리지 않아서 그렇지, 그 명예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의 고향, 벽란도는 지금 갈수가 없다. 예성강 하구 항구도시인 벽란도(碧瀾渡 도는 섬도가 아니고 건널도, 나루터 도다) 해방후까지 명성을 유지해왔지만 전쟁후 비무장지대가 되어 철책 안에 갇히고 말았다.

현지 안내를 해준 북쪽 민족화해협의회 신동철 공보과장도, 여자 안내원 동무도 태어나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고 했다. 철책으로 가두어 놓은 1000년전 동북아 최대의 무역항. 이게 지금 북한 경제 마인드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40년전 우리 수준이자 지금 우리의 10분1도 안되는 경제력. 우리와 거의다 정반대인 북의 사고체계와 세상을 보는 관점.

전국대학생협의회 회장 운동권 출신인 송영길의원(우리당, 남북특위)은 "지금 통일은 재앙"이라고 현대아산 앞마당에서 개성공단 건설현장을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통일은 해야하지만 지금 당장한다면 서로에게 불행이자 혼란과 비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취지일 것이다.

맹형규 한나라당 의원(산업자원위원장)은 오찬 건배사로 "고려 조선시대의 경제중심지 개성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며 "평화안정과 남북통일을 위해 공단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축하해주었다.

이광재 우리당 의원(산자위)은 "오늘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며 "10년 20년후 먼훗날 우리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시내 집과 상점과 학교 공공건물에 내걸린 여러 구호중 눈에 띠는 것은 두가지. "철천지 원쑤 미제를 몰아내자. 우리 식대로 살자.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그들은 명백한 우리의 적이었다.

또 다른 슬로건,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지도자 잘못 만난 죄 하나로 어렵게 살아가는 아무런 죄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눈이 마주 칠때면 그들은 같이 가야할, 같은 동포였다.

독일 통일을 일궈낸 서독 콜총리는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한참 부족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통일이 다가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준비 없는 통일은 재앙이지만 전쟁은 더 큰 재앙이다. 이런 재앙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흔한 말이지만 동질성 회복이 최우선이고 그 첩경은 경제교류이고 그중에서 특구는 특히 효율적일듯하다.

금강산 개성 특구에 이어 백두산, 묘향산, 나진항, 개마고원, 신의주특구...이런 특구가 10개는 생겨야 하지 않을까.

김윤규 현대아산회장은 "개성 공단이 홍콩 싱가폴에 앞서는 국제적 경쟁력 있는 무역 공단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유라시아 대륙으로, 황해 넘어 태평양으로 뻗어 나가는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꿈은 "개성공단에서 2000개의 업체가 250억달러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감상적 통일론, 긴장해소형 통일추진론을 뛰어넘어 통일이 비용이 아니라 수익이 될수도 있게 하는 기업인 주도- 경제도약형 통일 모델이 가능하다. 일본과 한반도 중국 내지는 러시아를 거쳐 유럽에 가면 물류만 절반이 싸진다. 북에 가로막힌 의식의 왜곡 해소와 대륙지향적 사고의 회복만으로도 GDP의 몇%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

독일과 달리 우리는 정치 외교 군사보다 경제가 통일을 주도한다. 신라가 3국통일후 250년의 번영기를 맞이했듯 남도 2국통일후 그러할 수 있다.

철책이 거둬지고 벽란도가 다시 국제무역항으로 거듭나고 개성이 고려때처럼 한반도의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때 통일은 콜총리 말대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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