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에 제동걸린 국가 재테크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2004.10.2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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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세시간전 헌법재판소가 수도이전 위헌 결정을 내렸다.
몇달전 '수도서울, 절대로 못옮겨가는 이유 10가지(?)'라는 제목으로 수도를 옮겨야 하는 당위를 적은 적이 있다. [수도서울, 절대로 못옮겨가는 이유 10가지(?) (상) (하) 보기]

1.수도권 비대화는 '시장의 실패', 어느 정부라도 나서야
2.규모의 불경제, 서울 경쟁력 갉아먹는다
3.'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헌법'?
4.'쾌적한 서울'이 자산가치 상승 잠재력
5.수도권 추가 주택공급 한계
6.통일이나 하고 나서 논의하자고?
7. 50만명만 내려가서야
8.'천문학적인 비용'은...
9.'절차문제'로 본질 가릴순 없다
10. 아무튼 안돼? 수도이전은 대한민국의 재테크



헌재의 결정과 상관없이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과 상관없이, 여전히 수도는 옮겨가야 한다는 위와 같은 이유에는 변함이 없다.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건 헌재의 위헌결정 이유이다.
수도이전 불가론을 짚어보면서 가장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게 세번째로 들었던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헌법'이라는 논리였기 때문이다.
헌법소원을 대리하고 있는 이석연변호사가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명문화되지 않았을 뿐 헌법 조문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 것은 '정서적 양념', 그것도 서울시민의 정서를 반영한 것일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타지역 사람들의 감정까지 '배려'했지만, 본질은 서울특별시민 서울공화국민으로서의 '기득권' 침해가 심기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남의 땅에 집을 짓고, 남의 선산에 묘를 써도 오래되면 점유권이라는게 생기는데 600년씩이나 누려온 수도시민의 권리를 누가 빼았느냐는거다. 공정한 게임의 법칙인 '기회균등'이 '경제정의'의 기본이라는 건 '경제정의 실천' 시민운동연합 사무총장출신이 아니라도 알법한데, 서울시민 말고는 수도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려볼 꿈도 꾸지 말라는게 헌법이라는 주장은 해도 너무했다"라고 썼었다.



수도이전 반대론자들도 대부분 글로벌시대의 경쟁력, 천문학적 비용 같은 이유보다 '서울=헌법'이라는 주장에 무게를 싣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그런데, 헌법재판소는 '해도 너무 한' 그 주장을 압도적 다수로 채택했다.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므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절차적 위헌' 의견조차도 1명의 소수의견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서울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조선시대부터 경국대전에 그대로 반영됐으며, 일제 강점시기에도 경성부, 즉 서울은 우리나라의 행정중심지로서 역할을 계속하면서 수도로서 대외적 상징성을 유지했다"는 걸 수도이전 위헌의 근거로 들었다.

대부분 국민들이 고등학교 이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경국대전'을 먼지구덩이에서 끄집어내 수도이전 추진을 주저앉힌 헌재의 능력은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문득 10년전 바다건너 미국에서 열렸던 O J 심슨 재판이 떠오른다. 전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흑인 스포츠스타 심슨은 TV로 생중계된 고속도로 도주, 피묻은 장갑 등 증거물, 상습적인 아내구타 전력등에 비춰 유죄라는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로버트 샤피로, 자니 코크란 등 드림팀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수사 경관이 평소 인종차별 편견을 가졌다는 정황을 제시, 배심원들의 무죄평결을 이끌어낸다. 도저히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수사경찰의 머릿속 생각을 무죄평결로 접속시킨 것이다. 전문가들(특히 법률 전문가들)은 역시 '상식'을 뒤집을 수 있는 무기를 어디서건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다시 경국대전으로 돌아가서, 90년의 작업끝에 성종 2년(1470년)에 완성된 조선의 기본법전이 '경국대전'이다. 이·호·예·병·형·공의 6전으로 구성돼 조선의 국가 조직과 정치·사회·경제 활동에 대한 기본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본 법전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다 왕조멸망과 더불어 운명을 다했다. 그런데 이 경국대전이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성문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처음 들어보는 '관습헌법'의 골간이라는 자격으로...

헌재가 왜, 하필이면 '조선왕조 창건이후 600년간'을 '관습헌법'의 소급기간으로 택했는지가 일차 미스터리이다.
결정문에서 "서울은 사전적 의미로 수도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라고 이야기하면서 통일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서울의 어원이었다는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수도이전 대상지가 충청도가 아닌 경주로 바뀌어 새로운 분열을 초래할까 우려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영토가 가장 널리 확장됐던 고구려까지 거슬러가는건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제쳐뒀고, 북한땅인 송악을 도읍으로 했던 고려의 조상들은 '관습' 형성에 기여할 자격이 없었는지...법학계보다 사학계에 엄청난 과제를 던진 셈이다.

이른바 '관습헌법'의 형성시기를 떠나, 헌재는 결정문에서도 힘줘 강조했듯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최고기구이다. 그런데 반-상의 계급사회를 기본 규범으로 규정한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을 '헌법'의 반열로 끌어올린 것은 시대를 거꾸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체제위협적인 사고방식이다.

경제적으로 볼때 조선시대의 생산력은 (불완전한 형태이긴 하지만) 노비와 천민의 노동력을 최하층에 둔 봉건제와, 한양의 중앙집권주의가 결합돼 유지돼온 체제였다. 시장원리에 기본을 둔 자본주의 체제의, 그것도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통한 경제효율성 극대화가 국가경제의 과제로 떠오른 시대의 최고 판단준거를 조선시대에서 찾는다는 것은 천재성의 발로 아니면 역사의식의 결여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무려 6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온 헌칼로, 변화를 주저 앉힌 그 답답하고 철통같은 헌재의 장벽 앞에 우리 경제와 수도서울은 '워크 아웃' 기회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먼 장래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웰스 매니지먼트, 재테크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반복하건대, 수도이전은 노무현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에서도, 수도권 신도시를 열 몇개 더 지은 뒤에도, 현재의 수도권 구조아래에서는 다시 제기될수 밖에 없는 과제이다. 늦어질수록 이전비용도, 이전논란에 따르는 비용도 지금보다 훌쩍 늘어나 있을 것이다.

헌재라는 기구와 그 법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이 없지만, 존중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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