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정일미 선수의 볼이 18번 홀 그린 옆에 설치돼 있던 붐 마이크 줄 위로 떨어졌다. 중계 방송 현장에서 종종 생기는 일이다. 18번 그린은 다른 홀과는 달라서 선수들의 마지막 격전지(?)이기 때문에 중계 카메라와 장비, 각종 라인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경기 위원들이 와서 `임시 방해물(temporary obstruction)에 걸린 볼은 그 방해물을 제거하거나, 불가능할 경우 프리 드롭(free drop)을 할 수 있다`고 판정함으로써 방송 케이블을 조심스레 옮기고 경기는 속행됐다. 이것은 비단 그린 주변 뿐만이 아니라 전 홀을 통틀어 적용되는 룰인데 요즘 많은 골프 경기가 방송으로 중계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주어진 역할은 우승권에 드는 선수들을 따라 다니며 전 홀을 스케치하고 중계 말미에 우승한 선수에게 경기 내용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승 기대주 3∼4명을 따라다니며 각 홀마다 특징적인 내용들을 메모해야했다. 사나흘 경기를 지켜보는 사이에 2∼3 킬로 정도 몸무게가 빠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아, 아, 아," 동네 이장님처럼 애타게 마이크를 두드려보지만 먹통이질 않는가! 그때 오디오맨이 마이크 케이블을 돌돌 말아 쥐면서 내게 말했다. "저∼, 생방 시간이 모자라서 조금 전에 CM으로 넘어갔는데요..." 허무한 내 인생이여!
중계 캐스터가 된 이후 첫 골프장 현장 중계방송을 하던 그 날, 나는 정일미 선수의 볼을 보면서 나만의 웃지 못할 기억을 슬그머니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