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나와 다시 정치로, 커뮤니티의 정치학

머니투데이 우경희, 이재원 기자 2017.03.0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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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선기획-커뮤니티의 정치학]①

'노하우' 홈페이지'노하우' 홈페이지


태초에 '노하우'(노무현과 하나되는 우리들)가 있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고 노무현 대통령)의 홈페이지다. 커뮤니티 1세대들은 노하우를 정치 커뮤니티의 조상으로 꼽는다. 게시판-베스트로 이어지는 노하우의 시스템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선거운동 관련 제안이 베스트가 되면 실제로 실행되는 구조였다.

여기서 활동하던 네티즌들은 이후 분화됐다. 스포츠, 취미, 주식(경제), IT 등 취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로 흡수됐다. 그러면서 정치는 옅어졌다. 대신 관심사가 부각됐다. 이후 십수년간 커뮤니티는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같은 깃발을 들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온라인대전을 벌이는 전장이 됐다.



커뮤니티간 크고 작은 충돌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굵직한 사회이슈가 벌어질 때마다 시각차를 앞세우며 격돌했다. 지난해 터진 이른바 메갈리아 사건은 커뮤니티 격돌의 한 예다. 게임계에서 촉발된 '여혐'(여성혐오) 논란이 웹툰계 등으로 확전됐다. 여혐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린 계기였다.

그러던 커뮤니티의 물줄기가 다시 정치를 향한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지면서다. ‘진보+중도’를 표방하는 커뮤니티들이 촛불을 들었다. 보수 진영으로 기운 커뮤니티들은 태극기에 힘을 실었다. 여기에 현실 정치인까지 결합하면서 커뮤니티까지 광장으로 나왔다. 대선을 불과 수개월 앞둔 시점이다.



정치에서 나와 다시 정치로, 커뮤니티의 정치학
◇오유부터 일베까지 = 1999년 출범한 오늘의유머(오유)와 2001년 싸이월드에서 태동한 클리앙은 진보진영으로 대표적 커뮤니티다. 둘 다 ‘친노’를 기본 정서로 하면서 ‘친문(친문재인)’으로 이어진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민주당을 박차고 나간 순간부터 ‘친안(친안철수)’ 세력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클리앙은 오유보다 진보의 극단에 있다는 평이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빗댄 '탕탕절'(10.26) 같은 단어가 클리앙에서 처음 나왔다.

정도는 다르지만 역시 진보로 분류되는 ‘뽐뿌’는 쇼핑정보 사이트로 출발했다. ‘친노 친문’ 성향으로 분류된다. 재밌는 건 ‘82쿡’이다. 요리 레시피 공유 사이트로 출발했다가 육아, 연예에 이어 정치까지 영역을 넓혔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여성이 주류다. 처음엔 전업주부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직장맘 참여 비중이 늘었다. 문재인-안철수-이재명 지지자가 공존한다. 다음 아고라를 계승한다는 해석도 있다.


MLB파크는 상대적으로 중도 진보로 분류되지만 친노 성향만 놓고 보면 강성이다. 노 전 대통령을 이름으로 부르면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지지 성향이 강하다. 장인 수준의 피규어(캐릭터인형)나 디오라마(전장재현모델) 제작자들이 다수를 구성한 ‘루리웹’은 "여친(여자친구) 빼고는 다 만든다"는 금손들의 모임으로 불린다. 국정농단 사태 전까지는 진보와 보수 성향이 대등했는데 이후 진보가 우세를 보이며 문재인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지만 친민주로 분류하긴 어렵다.

SLR클럽과 보배드림 등 커뮤니티는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깝다. 진보로 기우는 분위기 속에서도 급진적인 진보에는 거부감을 보인다. 특히 자동차 정보사이트로 출발한 보배드림의 경우 문재인 지지자에 대해 '문베충'(문재인+일베)이라는 비난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전여옥 전 의원과 만난 디시 회원들. 키보드워리어, 입진보 등의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사진=머니투데이DB전여옥 전 의원과 만난 디시 회원들. 키보드워리어, 입진보 등의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사진=머니투데이DB
◇전여옥이 낳은 단어 '키보드워리어' = 디시인사이드와 거기서 파생된 일간베스트(일베)는 보수 내지는 보수보다 더 우측으로 분류된다. 디시는 정사갤(정치사회갤러리)을 중심으로 극우적 정치색을 띤다. 하지만 본래 2000년대 초반까지는 친노들의 활동 무대였다. 2004년 탄핵 반대가 가장 활발했던 것도 디시다.

보수로 돌아서도록 계기를 제공한 이는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이다. 디시가 전 전 의원을 비판하며 오프라인 토론을 요청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막상 간담회 참석자들은 아무 공격도 하지 못했다. 이 촌극을 기점으로 디시 내 진보세력은 급격하게 축소됐다. 온라인에서만 센 '키보드워리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보수 네티즌이 득세하며 지금과 같은 지형을 갖췄다. 호남을 비하하는 '홍어'나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단어들이 대부분 디시 정사갤에서 나왔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정치 전반을 조롱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른바 '모두까기' 식이다

일베는 출범부터 성향이 드러난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게시물을 디시 운영자들이 삭제하자 이에 반감을 가진 이용자들이 별도로 게시물을 모아 만든 게 시초다. 디시의 상호욕설, 반말 문화를 그대로 승계했다. 서슴없는 극단적 발언이 난무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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