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모임이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2024.1.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기사를 쓰려고 노트북 자판기에 손을 얹었다가 멈칫한 적이 있다. 'ELS 투자자'라고 써야 하나, 'ELS 가입자'라고 써야 하나. 홍콩 ELS는 파상상품이고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상품이니 당연히 투자자라고 표현해야 옳다. 그런데 총판매액 19조원 중에서 16조원이 은행에서 팔렸다. 이 말은 홍콩 ELS 투자자 대부분이 은행 고객이며 예·적금 가입자라는 뜻이 된다.
언론사들도 용어 선택이 제각각이다. 수조원대 손실이 예고되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ELS 기사가 쏟아졌다. 기사에는 투자자와 가입자가 혼재돼 있다.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사에서 집단시위를 벌인 홍콩 ELS 투자자들은 용어 선택에 더 민감했다. 자신을 '투자자'가 아니라 '가입자'라고 주장했다. '투자자'라고 표현한 금감원 보도자료를 두고선 "가입자로 수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투자자와 가입자의 차이를 알 정도면 금융 지식 수준이 상당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홍콩 ELS 사태는 돌아볼 지점이 수두룩하다. 2019년 해외 금리연계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돼서다. DLF 투자자 3000명 중 80대 치매 노인이 있었지만 손실액 전액을 돌려받지는 못했다. 20%의 자기책임을 물었다. DLF 사태를 계기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돼 2021년 시행됐다. 소비자 권익증진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지만 금융회사는 "형식과 절차만 지키면 된다"는 자기 면피 수단으로 활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금감원은 이달 말쯤 홍콩 ELS 손실 배상안을 내놓는다. 금소법 이후 자기책임 범위를 얼마로 볼 것인지 '기록에 남을' 중대한 결정이 곧 내려진다. 시기는 민감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40만명의 투자자를 '유권자'로 보는 정치적 시선이 큰 부담이다. 하지만 이를 의식하는 순간 노후 자금을 날린 투자자도, 과징금 위기의 금융회사도 '비싼 수업료'를 내고도 배우는 게 전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