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주 "기자 출신이라 캐스팅? 다 찍고 알아서 다행" [인터뷰]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4.06.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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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우 진기주는 대기업 사원과 기자라는 다소 이질적인 이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디즈니+ 시리즈 '삼식이 삼촌'에서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캐릭터를 만나며 오랜만에 과거의 자신과 마주했다. 신연식 감독 역시 제작발표회에서 진기주가 기자 이력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기주는 '다 찍고 들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고 싶다는 바람에 시작했지만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 역시 공존했기 때문이다.

'삼식이 삼촌' (연출·극본 신연식)은 전쟁 중에도 하루 세끼를 반드시 먹인다는 삼식이 삼촌과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엘리트 청년 김산이 혼돈의 시대 속 함께 꿈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진기주는 김산(변요한)의 연인이자 주인태(오광록)의 딸 주여진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모든 작품이 공개된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아이즈(IZE)와 만난 진기주는 "여전히 여운이 크게 남고 뭉클하다"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말이나 행동이 아닌 차분하게 분위기로 자신을 드러내는 주여진은 진기주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었다고 털어놨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진이는 정말 어른스럽잖아요.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고, 모두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그런 어른이요. 욕망과 야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잘 컨트롤 할 수 있고요. 보통 자신이 가진 의도와 목적을 대사, 말로 표현하는데 여진이는 그런 걸 최대한 줄이고 그 주변에 공기처럼 담고 있는 캐릭터라서 해보고 싶었어요."

동시에 주여진이 가진 특징은 진기주가 '나에게 이런 역할이 들어올까' 의심하고 있던 캐릭터였다. 이러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경험과 내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우 입장에서는 표현할 수 있는 장치가 많지 않고 조금만 삐끗해도 들통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훨씬 더 내공이 쌓였어야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저에게 이런 역할을 제안했다는 건 그 안에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척 하고 싶었던 캐릭터지만 너무 무섭기도 했어요. 표현할 수 있는 장치가 줄어서 연기 내공이 필요한데 제가 할 수 있을까 의심이 컸던 것 같아요. 저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애가 외형적으로 여진이의 정신 연령을 담을 수 있을까도 무서웠어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여진과 만났지만,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결국 진기주가 할 수 있었던 건 내면 자체를 '주여진스럽게' 바꾸는 일이었다.

"내면 자체가 바뀌어야 여진이가 담길 수 있고 카메라 앞에서 여진이로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취향, 취미를 많이 비워냈던 것 같아요. 계속 여진이처럼 생각하고, 서 있고, 자세를 유지하면서 그런 것들을 쌓아두려고 했어요. 제가 현장에서 조용히 있다가 툭툭할 수 있었던 것도 여진이의 성향에 물들었던 것 같아요."

차츰차츰 내면을 주여진처럼 만들자, 주여진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을 알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주여진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도 의문이 있었지만, 곧 이는 자신의 욕심임을 깨달았던 순간이 대표적이다.

"저도 대본을 읽을 때 '더 깊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이건 여진이의 욕심이 아니라 진기주의 욕심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여진이는 누가 아버지를 그렇게 했는지 본인이 아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서 명예를 되찾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무서워하기도 하고 실제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게 여진이 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주여진은 국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엘리트이자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다 애민일보 기자가 된다. 실제 진기주도 2014년 G1방송 강원민방에 입사해 수습기자 생활을 겪었다. 제작 발표회 당시 신연식 감독은 기자 출신이라 캐스팅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도 제작발표회 때 그 말을 처음 들었어요. 정말 당황해서 감독님을 쳐다봤던 기억이 나요. 다 찍고 들어서 다행이에요. 물론 개인적인 반가움은 있었어요. 실제 기자 생활은 너무 짧아서 송구스럽기도 해요. 수습기간만 거치고 정식 기자가 될 때 그만뒀어요.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이면 헛구역질을 하는 제 모습을 보였거든요. 저를 끝까지 몰아붙였던 시간을 겪다 보니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기자의 삶을 경험해 본 진기주는 당시를 살았던 기자의 시각을 어느 정도 이해하며 주여진을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붙이기보다는 객관적이고 담백한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었기에 주여진이라는 캐릭터가 더 풍성하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교과서에서 기록을 볼 때와 실제 당시를 살던 기자의 시각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부, 학생, 많은 단체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크고 작은 모임에서 시위를 하는 시대였잖아요. 교과서에서는 지금 우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든 시간으로 묘사하는데 그 시대의 사람이라면 그런 시각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역사적인 의미를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단순한 사건사고를 보는 느낌으로 접근했어요."

진기주는 기자 생활 이전 대기업에서 3년간 재직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꿈을 찾은 진기주를 향해 많은 관심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진기주는 '저는 도전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 사실이 알려진 게 '리틀 포레스트' 개봉할 시기와 맞물렸는데 무대 인사에서 '저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때 마음이 조금 불편했던 건 '도전 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이 너무 싫어지더라고요. 도전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도전을 하지 않으면 약한 사람이 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많은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요. 저는 도전이 아니라 선택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진기주를 비롯해 변요한, 이규형 등 화려한 배우들이 즐비한 '삼식이 삼촌'이지만 그 중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건 35년 만에 첫 드라마에 나선 송강호였다. 진기주는 송강호와 한 컷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그 한 컷이 엄청난 경험을 줬다고 전했다.

"한 컷 밖에 만나지 않아서 아쉬운데 그래서 되게 긴장했어요. 처음부터 몇 번 만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중·후반부까지 주여진으로 촬영을 하다가 만났는데 다시 처음 촬영하는 것처럼 너무 긴장했어요. 물론 모니터 뒤에서는 대화도 많이 했지만, 촬영을 하니 정말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한 것처럼 엄청난 존재감과 거대한 무게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앞서 송강호는 "진기주에게 '고생했고, 매우 훌륭했다, '절제된 감정이 순수했고 정교했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진기주는 '제가 먼저 문자를 드렸다'며 관련된 에피소드를 전했다.

"제가 먼저 문자를 드렸어요. 촬영 내내 감사한 부분도 많고 배운 점도 많고 존경스러운 점이 많았거든요. 제가 그런 감정을 전달하는 데 소극적인 편이라 몇 달 동안 말씀을 못 드렸어요. 선배님은 워낙 그런 말을 많이 들으실 테니 늘 듣던 말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하다 시간이 흘렀어요. 이제 마지막 화도 오픈되고 홍보스케줄도 없어서 말할 기회가 사라져서 몇 시간 동안 고민하다 문자를 보냈어요. 선배님도 길고 정성스럽게 답변해 주셔서 그날의 일과는 그것만으로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배우라는 직업에 정착한 진기주의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도 한계 없이 연기를 하는 것이다.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주여진을 훌륭하게 소화한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해보고 싶었지만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주여진이라는 캐릭터를 한 것처럼 앞으로도 '나에게 올까' 싶은 캐릭터를 만나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캐릭터가 제가 할 수 있는 시기에 와줬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소화하고 한계 없이 하고 싶으니 저를 한계 없이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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