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살에 관둬도 "먹고 살 걱정 없어요"…10년 더 일하는 일본, 비결은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강주헌 기자 2024.06.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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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한국형 고령자 일자리 (上)

편집자주 연금 수령 시점과 정년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노인 인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고령자의 일자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일부 대기업 노조는 정년을 연장해달라고 하지만 재계는 정년연장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 '정년 60세'를 법제화 한 것이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고, 고령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정년 60세 법제화' 10년, 악화된 고령자 노동시장
2013년 이후 경제활동인구 및 경제활동참가율 추이/그래픽=이지혜2013년 이후 경제활동인구 및 경제활동참가율 추이/그래픽=이지혜


대한민국 국회는 2013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전에는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권고 규정만 있었는데, 초고령 사회(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를 앞에 두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법으로 정년을 연장했다. 이 법은 우리 노동시장의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꼽힌다.

정년연장이 법제화 된 이후 고령자(55세 이상) 경제활동 인구는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고령자 경제활동 인구는 916만7000명으로 2013년(576만2000명) 대비 59.1% 증가했다. 고령자 경제활동참가율은 2013년 48.3%에서 2022년 53.1%로 높아졌고, 전체 경제활동인구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2.1%에서 31.7%로 늘었다. 숫자로만 보면 고령자의 고용환경이 나아진 것 같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고령자 임시·일용직 비중은 27.7%로 15~54세 임시 일용직 비중(17.4%)보다 크게 높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중심으로 고용이 확대됐다는 뜻이다. 또 자영업자 비중은 다른 연령대(17.1%)에 비해 고령자가 37.1%로 두 배 이상 높다. 이 자영업자 중 대다수는 생계를 위해 홀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고령 근로자의 주된 일자리(가장 오랜 기간 근무한 일자리) 퇴직연령은 정년연장 법제화 이후에도 변화가 없었다. 국회미래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49.4세였던 주된 일자리 퇴직연령은 2022년에도 49.3세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여기에 정년연장 이후 정년퇴직자는 2013년 28만5000명에서 2022년 41만7000명으로 46.3% 늘었는데, 같은 기간 조기퇴직자는 32만3000명에서 56만9000명으로 76.2% 급증했다. 노동시장의 실제 은퇴 연령은 72.3세로,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뒤 20여년간을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로 정년연장 법제화의 혜택을 대기업 노동자 일부만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정년 60세 의무화는 고용 여력이 있고 고용 안정성과 근로조건이 양호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부문이 집중적인 혜택을 입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정년연장 법제화라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에서 고령자를 계속 고용할 경우 노동비용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기업이 고령자 고용을 기피하는 원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00인 이상 사업장의 55.2%가 호봉제를 택하고 있고 10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하면 비율이 67.9%까지 상승한다. 이같은 임금 체계 하에서는 생산성과 임금 간 괴리가 커져 고령 근로자가 많을수록 기업 효율성이 저하된다. 이 때문에 조기퇴직 등 제도를 통해 기업이 고령자 고용을 피할 수 밖에 없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 여력을 낮추는 것도 문제다.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은 정년연장 혜택을 받게 될 근로자가 1명 많을 경우 고령층(55~60세) 고용은 0.6명 증가하고, 청년층(15~29세) 고용은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2022년 "정년연장 수혜 인원이 1명 늘어나면 채용되는 정규직 근로자도 거의 1명 감소하고 있다"며 "임금 연공성이 높은 사업체에서는 정년연장 수혜 인원이 1명 늘어나며 정규직 채용인원이 거의 2명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또 하나의 변수도 존재한다. 한국의 초고령 사회 진입은 내년으로 앞당겨져 당장 노인 일자리 문제가 부상하지만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와 인구 감소로 일정 시점이 지나면 구인난을 겪는 시기가 온다. 이런 요인까지 고려해 노사 뿐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아우르는 고령자 고용 로드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실질적으로 노사 모두에게 고령자 계속근로가 매력적일 수 있도록 하는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정 정년만 60세일뿐…70세까지 일하는 일본의 비결
일본의 정년연장 추진 과정/그래픽=최헌정일본의 정년연장 추진 과정/그래픽=최헌정
한국보다 먼저 정년연장 문제로 진통을 겪은 나라가 있다. 바로 20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이다. 현재 일본의 법정 정년 나이는 60세지만 근로자가 원하면 무조건 65세까지 일할 수 있다. 사실상 정년을 연장한 셈이지만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기업의 부담을 줄여줘 일할 의지가 있는 근로자를 계속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이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현재 일본의 법정 정년은 60세다. 일본은 1998년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줄곧 법정 정년을 60세로 유지하고 있다.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일자리가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정년연장보다는 일단 퇴직 후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렸다. 기업의 임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였다.

근로자가 법정정년에 이르면 기업과 근로자는 고용확보조치에 따라 근로조건을 다시 정해 재고용된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5~69세 취업률은 전년보다 1.2%포인트 증가한 52.0%로 집계됐다. 일본은 이 제도가 완전히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에는 재고용 기한을 70세까지 늘리는데 합의했다.

일본은 또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개선해 기업이 고용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 줬다. 근로자 합의 없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지만, '사회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다. 기업은 이를 통해 고령자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게 됐고 고령자 역시 양질의 일자리에서 보다 긴 시간 동안 일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도 근로현장 실정에 맞는 재고용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진작부터 나왔다. 최근 일부 대기업 노조가 요구하는 대로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막대해진다. 한국의 경우 연공형 임금체계가 일본보다 더 견고하기 때문에 법정 정년이 연장될 경우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근속 1년 미만 대비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 임금은 3배에 달해 일본(2.3배)보다 높다. 독일 1.8배, 프랑스 1.6배, 영국 1.5배 등 유럽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경총의 '고령자 계속고용정책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에 따르면 30인 이상 기업의 67.9%는 재고용 방식으로 고령자 고용을 원했다. 이같은 경향은 기업 규모가 커질 수록 짙어졌다. 1000인 이상 기업에서는 재고용 방식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중이 74.4%였다. 임금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울러 응답 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7.1%는 고령자 계속고용제도 안착을 위해 필요한 정부지원책으로 '임금유연성 확보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 절차 개선'을 원한다고 답했다. '인력운영 유연성 강화를 위한 파견·기간제법 개선'이 37.7%, '고령 인력 채용 증가 시 세제 혜택' 33.0% 등의 대답이 뒤를 이었다.

경총 관계자는 "높은 수준의 임금 연공성, 고용 경직성, 부문 간 이중구조로 대표되는 우리 노동시장 현실을 고려할 때 고령자 계속고용은 임금체계 개편이 선결돼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법정 정년연장 방식보다는 재고용 중심의 계속고용 정책을 검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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