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가 이름값 제대로 한 '하이재킹'

머니투데이 최재욱 기자 ize 기자 2024.06.1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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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납치극의 긴장감에 실화가 주는 감동까지

사진=㈜키다리스튜디오사진=㈜키다리스튜디오


우리 사회는 수많은 영웅들의 희생과 인내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다른 사람의 목숨,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위해 모든 걸 내놓는 영웅둘의 모습을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매체에서 접할 때 가슴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영상화를 위해 상업적으로 각색되고 작품의 완성도가 기대치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실화가 주는 무게감은 항상 긴 여운을 선사하며 이미 잊힌 사건에 대한 주의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하정우 여진구 주연의 영화 ‘하이재킹’은 실제로 1971년 일어났던 대한항공 항공기 납북미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주인공은 1969년 일어난 대한항공 납북 사건을 막지 못하고 전역해 대한항공 부기장이 된 태인(하정우)과 피눈물 나는 사연으로 납치범이 된 22세 청년 용대(여진구)다.



1971년 겨울 속초에서 김포행 비행기에 오른 용대는 기수를 무조건 북으로 돌리라 요구하고 탑승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그 비행기의 부기장 태인(하정우)의 고군분투기가 시작된다. 생과 사가 오가는 한정된 공간. 긴박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탑승객들의 안전을 지키려는 태인과 꼭 북으로 가야만 하는 용대의 치열한 대립이 100분 동안 숨가쁘게 펼쳐진다.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납치극은 마치 관객들이 실제 사건 현장에 직접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아찔한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사진=㈜키다리스튜디오사진=㈜키다리스튜디오


물론 수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항공 납치극들을 봐온 관객들에게는 규모나 볼거리 면에서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실제 사건이 무려 50여년 전에 펼쳐졌으니 남북 긴장감이 최고조인 당시 상황의 긴박감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납치법이 전문 훈련을 받지 못한 소년이라 할 수 있는 22세 청년이니. 모든 게 서툴고 엉성해 현실감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결말 실제 사건 영상이 나올 때 뭔가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극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예측했던 영화 속 모습들이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 실감하면서 영웅의 희생에 깊은 감동이 느껴진다.

'하이재킹'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비교하면 소박해보일 수 있지만 볼거리가 결코 떨어지는 건 아니다. 분명히 경쟁력이 있다. CG로 완성된 국군의 항공기 추격신과 비상착륙신은 긴박감 넘친다. 철저한 고증으로 재현된 당시 시대상은 깨알재미를 선사한다.

하정우는 ‘하이재킹’서 묵직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자신의 진가를 과시한다. ‘역시 하정우는 개고생을 해야 제맛이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몸을 사라지 않은 열연을 펼친다. 용대의 폭주에 리액션하는 연기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며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최근 부진이 다 잊힐 정도다.


사진= ㈜키다리스튜디오사진= ㈜키다리스튜디오
이에 비해 여진구의 연기는 다소 아쉽다. 용대는 단순한 악역으로 볼 수 없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 매우 다층적인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인데 배우가 소화를 못한 건지 연출의 계산인지 불명확하지만 매우 단선적으로 그려진다.

다양한 사연을 지닌 승객들을 연기한 연기파배우들의 차진 앙상블도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 마치 연극무대와 같은 항공기 안에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이한 소시민들의 충격, 좌절, 가족애 등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관객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기장 성동일, 승무원 채수빈의 열연도 칭찬받을 만하다.

‘하이재킹’은 온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즐길 만한 여름 성수기에 최적화된 상업 영화다. 아찔한 스릴만큼 영화 결말엔 감동도 덤으로 받아 갈 수 있다. 12세 관람가. 100분. 6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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